교육 목표와 평가의 방향성 일치 필요…수능은 불일치
수능에서는 영어 말하기, 쓰기도 객관식 문제로 출제돼
경쟁으로 내모는 객관식 상대평가 “이제는 지양해야”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사 전문성…IB 도입에 최적화된 ‘한국’
“교육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궁극적으로 KB로 나아가야”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오는 21일 방영되는 MBC 다큐멘터리 '교실이데아 – 수능부터 IB까지: 미래 교육의 추월 차선을 찾아라' 촬영의 일환으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하식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장밝은 경북대사대부고 교사,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사진=MBC 제공)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오는 21일 방영되는 MBC 다큐멘터리 '교실이데아 – 수능부터 IB까지: 미래 교육의 추월 차선을 찾아라' 촬영의 일환으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하식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장밝은 경북대사대부고 교사,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사진=MBC 제공)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대표적인 객관식 상대평가 시험으로 알려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1994년 도입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최근에는 시대에 부적합한 시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능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교육계 전문가, 석학들이 모여 이에 대해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

지난 7일 서울 상암동 MBC 골든마우스홀에서는 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토크 콘서트는 오는 21일 방영되는 MBC 다큐멘터리 <교실이데아 – 수능부터 IB까지: 미래 교육의 추월 차선을 찾아라> 촬영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시작된 이번 토크 콘서트는 2부로 나뉘어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나라 교육을 들여다봤다. 1부에는 박하식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장밝은 경북대사대부고 교사,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참석했으며, 2부에는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참석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 “수능은 교육과정에서 원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 아냐” = 토크 콘서트는 우리나라 대입에서 가장 중요한 ‘수능’을 주제로 한 논의로 시작됐다. 학력고사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4년부터 도입된 수능은 이미 30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출산, 사교육 등 사회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이혜정 소장은 목표와 평가의 방향성이 일치해 최종적으로 길러지는 능력이 맞아야 올바른 교육인데 수능은 물론 대학에서 받는 교육마저 이런 목표와 평가가 괴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국가교육과정의 목표가 틀린 것이 아니”라며 “문제는 국가에서 주도하는 시험인 수능이나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가 국가교육과정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와 기르고자 하는 역량을 측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평가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하식 교장은 학교 현장에서 겪는 수능 과목 여부에 따른 현장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설명했다. 박 교장은 “우리나라는 (수능의 영향으로)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끔 돼 있다”며 “고등학교 1, 2, 3학년 각 학년에서 배울 내용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떻게 수능을 잘 준비시키느냐로 변질돼 있다”고 일침했다.

이어 “전국 모든 고등학교 교사들은 수능 중심으로 내신 문제를 내게끔 돼 있다”며 “(객관식으로만 출제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수능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모든 정기고사가 수능 형태의 객관식으로 출제된다”고 덧붙였다.

박 교장은 수능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수능이 객관적‧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 때문에 지금처럼 객관식으로 출제되고 있다”며 “교장으로서, 고등학교 교사로서 교육과정을 교육적으로 운영하고, 심층적인 질문에 대한 문제를 만드는 데 너무나도 큰 제한을 준다는 점을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밝은 교사는 현직 영어교사로서 교육과정의 목표와 실제 교육 현장의 괴리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영어 교과는) 실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명확하게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며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초보적인 수준에서도 영어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영어를 굉장히 싫어하는 상태에서 졸업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장 교사는 이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수능과 말하기, 쓰기의 간접평가를 꼽았다. 그는 “수능에도 말하기와 쓰기 평가가 있다”며 “그런데 오지선다형 문제로 출제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업에 수행평가를 도입했다. 문제는 수행평가 문항부터 채점 기준표까지 표준화된 참고할 만한 틀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능에서도 말하기, 쓰기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간접 말하기 문항의 경우 두 학생의 대화를 제시하고 다음 대화에 알맞은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 출제되고 있다. 간접 쓰기 문항은 임의로 제시된 문단을 글의 순서로 올바르게 나열한 것을 찾는 방식이다. 즉 학생이 영어로 말하기와 쓰는 것을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방식이다.

장밝은 경북대사대부고 교사
장밝은 경북대사대부고 교사. (사진=MBC 제공)

■ 객관식 상대평가의 위험성…“교육 목표와 종류에 따라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 이어진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객관식 상대평가’였다. 대표적으로 수능이 취하고 있는 평가방식으로 객관식은 주어진 예시에서 정답을 고르는 방식이며, 상대평가는 개인의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의 성적과 비교해 상대적 위치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장 교사는 “객관식 문항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교육의 목표에는 층위가 있기 때문에 교육 목표의 종류에 따라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문제는 객관식 상대평가만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학교와 국가의 교육과정에 상위의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주관하는 평가는 하위 수준의 목표들만 측정한다”며 “이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국가교육과정의 파행을 조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사는 수능의 선다형 문항을 다 없애는 것이 아닌 서술형이나 논술형, 구술형 등 다양한 형태로 고등 사고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평가 유형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이 소장은 “학교 내에서 상대평가를 하는 시스템은 ‘오징어 게임’과 같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구조는 우리 사회를 더 적대적으로 만들고 인간성과는 더 먼 쪽으로 유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박 교장 또한 “(우리나라는) 수능만이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하고, 변별력 있는 시험이라는 편견과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며 “객관식 시험의 편견에서 빨리 벗어나 시험다운 시험, (학생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다운 평가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대안적 방법론으로 제시된 ‘IB’…중요한 것은 ‘시스템’ =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는 스위스의 비영리 교육재단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에서 연구·개발한 국제 인증학교 교육 프로그램이다.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1968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에는 대구‧제주 교육청을 중심으로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IB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서술형 위주의 교육과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학생들의 학업역량, 비판적 사고, 창의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IB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PYP(Primary Years Programme) △중학교 MYP(Middle Years Programme) △고등학교 DP(Diploma Programme)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에는 기존에 IB를 도입하고 있는 대구, 제주 외에도 서울, 경기, 부산, 전남, 전북, 충남 등에서도 IB 도입 의지를 밝혔다.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수능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IB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박하식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우리나라 최초로 IB를 도입하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하식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사진=MBC 제공)

2010년 경기외고에 우리나라 최초로 IB를 도입했던 박 교장은 “당시 IB 도입은 경기외고 자체만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평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진행했다”며 “곧이어 두 번째 학교가 생기리라 생각했는데 2019년 한국어 IB가 도입되면서 붐이 일기 시작했다”며 국내에 IB가 도입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장 교사는 교사의 입장에서 바라본 IB 도입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장 교사는 “우리나라 교사의 입시 퀄리티는 전 세계적이다. 그런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우리나라는 교사의 자기 직업에 대한 효능감이 갈수록 낮아져 최하위를 기록했다”며 “IB는 교사의 자율성을 무한대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교사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고 말했다.

장 교사가 꼽은 IB의 장점은 최종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학습의 맥락이나 주제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안정된 시스템이 받쳐 주기 때문에 교사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 소모할 필요 없이 학생을 가르치는 데 100%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장 교사에 따르면 더 극적인 변화는 학생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학생들이 처음 IB 과정을 선택해 들어올 때 목표는 더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가 있다”며 “신기한 점은 IB 과정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면 여전히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맞지만 출세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사진=MBC 제공)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 (사진=MBC 제공)

이 소장은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국내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학생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IB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사를 예로 들며, 시스템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사들은 IB를 하기에 전 세계에서 최적화돼 있다”며 “IBO에서도 한국 교사들의 교과 전문성을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비판과 창의는 지식의 전문성이 있으면 날개를 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집어넣기만 한 교육, 선진 지식을 토달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흡수만 하는 교육으로 누구를 따라가는 경제 성장은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더 이상 옛날 같은 공부로는 예전처럼 경제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소장은 “이제는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내 생각, 내 관점, 내 주제, 내 아젠다, 내 생각을 기르고 이런 부분이 평가되고, 고득점을 받을 수 있어야 판이 바뀐다”고 말했다.

이어 “IB가 공교육의 전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씨앗을 어느 정도 형성해 놓으면 그걸 바탕으로 전체 공교육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할 수 있는 KB(Korea Baccalaureate)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수능과 내신을 선진화해 궁극적으로 10년, 15년 플랜으로 KB를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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