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대한민국이 지역소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과 지역의 상생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이 중요한 시점이다. 현 정부의 주요 고등교육 정책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는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대학과 지역의 동반성장을 이끌기 위한 정책이다. 이에 본지는 지역과 동반성장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지역혁신 허브로서의 대학 역할, 라이즈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지자체 입법과제, 평생교육 차원의 거버넌스 혁신 방안 등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보고, ‘인재양성-기업유치-취창업’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박승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전 교육부 부총리 자문관)
②김규용 충남대학교 교수
③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④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학령인구 감소, 지역인재 수도권 유출 등으로 인한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인적자원 개발 및 국가균형발전 전략으로서 최근 정부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라이즈(RISE)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정책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입시 위주의 교육, 학벌주의의 병폐, 지역 차별, 소외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허위의식(虛僞意識)을 극복하고 교육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신념과 명분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라이즈 정책은 감히 ‘라이즈 시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지역 대학뿐만 아니라 지자체, 산업체, 연구기관 등 각종 지역 현장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라이즈(RISE)란 지역혁신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이하 RIS)와 교육(Education)의 합성어다. 따라서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해왔던 RIS 정책에 더해 지역과 밀착된 인적자원의 개발 및 대학의 교육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책은 사회 생산 관계의 총화인 경제구조, 즉 경제 기반의 산업 클러스터를 지역혁신체계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보는 경제결정론(economic determinism)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산업 경제체제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술의 촉진, 학습, 그리고 지역혁신의 주체로서 중등 및 고등 교육기관, 기업 및 연구기관의 학습 네트워킹, 산학협력,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라이즈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인적자본(human capital)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및 정체성 자본(identity capital)이 함께 형성돼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자본의 확충은 인적자본 효과를 배가시킬 뿐만 아니라 상호 신뢰, 비전 공유, 협력적 학습을 통해 지역의 기술 및 인재 유출을 예방하는 등 이른바 지속적인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역혁신,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은 사회적 자본, 사회혁신보다는 인적자본이나 기술혁신에 중점을 뒀다. 따라서 라이즈에서는 지역의 기술혁신과 더불어 사회혁신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한편 평생학습은 사람들 간의 신뢰, 포용, 집단적 지성의 발현 등 지역의 사회적 자본뿐만 아니라 일상의 학습을 통해 주민들이 삶의 의미, 자존감의 회복, 자아실현 등 정체성 자본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라이즈의 지속적 성공을 위해 인적자본 정책이 경제적 역량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사회적 자본 정책과 정체성 자본 정책은 각각 정치적 역량 및 심리적 역량의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다. 평생학습은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 및 정체성 자본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며 지역혁신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9월 본지가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2023 UCN(대학경쟁력네트워크)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추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9월 본지가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2023 UCN(대학경쟁력네트워크)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 추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이러한 맥락에서 향후 라이즈 시대, 평생교육 거버넌스를 정비하기 위해 많은 정책과 방안이 요구되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생애학습(lifelong learning)의 관점에 따라 지역에 기반을 두고 태어나서 지역에서 자란 인재가 지역 인적자원으로 성장하려면 현재 대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라이즈의 범위를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 전체로 확대하고 지역에서 평생교육 정책의 개념 범위 또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에서 중등교육과 고등평생교육 연계시스템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지역혁신은 근본적으로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라이즈 체제 구축은 고등교육단계뿐만 아니라 생애 전반에서 평생학습 경로의 중요한 전환적 학습 주기이며 이와 연계해 있는 중등교육에도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현재는 지역 평생교육 거버넌스에 학교 교육이 제외돼 있기 때문에 생애전반을 관통하는 지역주민의 평생교육 지원정책으로 미흡한 점이 많이 있다.

한편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에서 중등교육이 분리돼 있어 직업기술 고등학교는 지역의 암묵지로서 산업 노하우 및 문화, 사회적 자본과는 동떨어져 있게 되고 창업 교육조차도 너무 기술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창업 교육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가로서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상대를 설득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의 경제·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히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평생교육 시스템과 분리된 중등교육 체제와 기술 교육 중심인 직업기술 고등학교 교육 전반을 지역산업과 밀접히 연결하는 한편, 창의 개발 및 창업 교육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지능정보사회,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다문화, 세계화 등 사회 거대 물결(megatrend)에 대응하기 위해 라이즈의 장기적 비전 설정은 기존의 학령기 중심 국가교육체제 자체를 평생학습 체제로 변화시키는 노력과 병행돼야 한다. 라이즈의 범위를 평생교육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할 때,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라이즈의 법적 근거를 점검하는 일일 것이다. ‘평생교육법’은 학교 밖 평생교육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평생교육 정책이 라이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라이즈의 법적 근거는 매우 취약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라이즈는 명실상부 지역 되살리기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정부 각 부처 공동의 정책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각 부처가 서로 밀접히 연계돼 추진되고 있는지, 라이즈와 관련된 기존 관련 정책들과 중복성이 없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교육 및 산업, 연구개발(R&D), 고용, 복지가 연계된 이러한 통합정책을 위해 부처 간 정책 연계나 통합은 정책 이행을 위한 거버넌스 구조나 법적 근거 없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다. 현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사회부총리 제도나 ‘평생교육법’ ‘인적자원개발 기본법’ ‘국민평생직업능력개발법’ 등이 있지만 이러한 제도들은 실효성이 없거나 서로 충돌해 오히려 명목상에 그치거나 관련 부처 간 정책 단절을 공고화시킨다는 우려가 있어 왔다.

셋째, 학습자들이 전 생애에 걸쳐 현실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의 미래 삶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의 평생학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각 부처에서 분리돼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지역에서 수렴해 국민에게 제공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라이즈와 같은 ‘사회정책으로서의 교육정책’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동안 교육정책은 학령기 위주의 교육에 초점을 두거나 한국 사회나 경제와는 분리된 상태에서의 ‘외딴섬’에서 정책의 개발과 성과를 판단해왔다. 따라서 하나의 교육 현상이나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정책입안자, 경제학자, 교육학자, 학부모, 학생 등 입장에 따라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고 갈등의 소지를 늘 내포하고 있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사회정책으로서의 교육정책’으로서 라이즈의 비전은 지역주민의 교육훈련과 산업현장과의 연계를 통해 고용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적극적인 평생학습 참여를 통해 역동적인 평생학습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라이즈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지역 평생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재정 투자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초등·중등교육, 고등교육, 성인교육, 노인교육 등 각 단계가 분리된 상태에서 설계한 정책으로 지역 교육혁신, 지역과 밀착한 인재 양성, 지역인재 유출 방지 등과 같은 문제에 대처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향후 라이즈의 성패는 지역 평생학습 생태계의 성공적인 구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선진 주요국에서는 평생교육을 미래의 국가 의제(agenda)로 설정하고 막대한 재정 투자를 해왔다. 최근에는 그동안 투자 성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의 평생교육 재정 규모가 열악한 것도 현실이지만 평생교육과 관련해 각 부처 예산 중복 문제도 심각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라이즈의 경우에도 현재 투입 예산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사업이 지속되기 위해 그 예산의 재원, 그리고 책임 범위를 중앙정부에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지역에서 이를 감당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정 상황이 열악한 많은 지역은 사업을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없는 경우, 사업 투자 대비 효과 자체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를 봐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장기적 비전과 안목을 가지고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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