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

한국의 대학을 다스리는 고등교육정책은 21세기 전환기를 전후해 모순과 실패로 점철된다. 1990∼2000년 동안에는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무분별한 대학 팽창 정책이 시행됐고, 2000년 이후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축소 정책이 강행되고 있다.

지난 세기 10년 동안 설립된 사립대학의 수를 108개로 늘린 팽창 정책은 대학의 질과 경쟁력에서 서열화를 부추겼고,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축소 정책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매개로 대학의 빈부 양극화를 초래했다. 두 가지 모순된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을 공적인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적인 이윤추구 기업으로 간주해 중소 사립대학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강제적인 대학평가와 국책사업을 통해 2015∼2023년까지 8년 동안 입학정원 16만 명을 감축해 40만 명 선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부실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지면서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 폐과와 학과통폐합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매년 감소하는 대학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어기면서 교원에 대한 급여 삭감과 직권 면직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앞으로 진행될 2∼3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수도권과 지역 간 대학재정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대학의 빈부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퇴출 대학이 늘어남으로써 교수·직원 실업자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서열과 경향의 소재지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버린 대학의 빈부격차는 중소 지역 사립대학을 곤경에 빠뜨리면서 지역의 고등교육 기반을 파괴하는 중이다.

대학의 이념을 설파한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Jaspers)에 따르면 대학은 시대의 가장 현명한 의식이 만개할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가 그 존재를 보장하는 곳이다. 대학은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들이 교수와 학생으로서 모이고, 과학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수양이 요청되는 국가적인 직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다지는 곳이다. 따라서 대학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유재산’이고, 국가와 사회는 대학의 공공(익)성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유럽의 선진국처럼 국민의 고등교육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고, 모든 국민은 대학의 보편적인 이념에 따라 국가가 운영하는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가 시대의 현명한 의식 형성, 진리 추구, 과학적·정신적 수양에 기초한 국가적 직업교육이라는 대학의 이념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정부는 현재 주로 사립대학을 겨냥해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 정책을 중단하고 국공립대학 또는 공영(익)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는 고등교육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고등교육 정책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규모의 정원감축 및 부실대학 퇴출을 겨냥했다면, 앞으로는 정원감축과 대학 퇴출 후의 후유증을 해소하는 대학 정책에 몰입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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