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줄이기’ 제도적 실험은 모두 실패…근본처방 필요

학력에 따른 고졸-대졸 임금격차 OECD 중 미국에 이어 2위
간판보다는 교육의 질이 중요한 시대, 대학 스스로 앞당겨야

『우리나라 근대 고등교육의 역사는 1945년 8.15 광복 이후 시작돼 올해로 70년이 된다.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서양에 비해 초라한 역사라고 단정지을 일이 아니다. 우리 대학의 70년은 수많은 동량을 배출해 압축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국가의 첨단산업을 이끄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룩한 놀라운 역사이기도 하다.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개혁으로 인해 대학인의 자부심이 날로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대학신문은 대학 70년 역사를 통해 ‘한국대학의 유산’을 선정함으로써 우리 대학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한국대학의 유산'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정책, 장소, 유적 등을 총망라한다. -편집자 주』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1977년 7월 23일. 재수생이라는 선명한 세글자가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再修生(재수생) 문제해결을 위한 종합대책', 일명 재수생종합대책에 관한 소식이었다. 당시 문교부가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를 토대로 마련한 이 대책은 교육을 넘어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하던 재수생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일대 수술이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현재 재수생은 여전히 대학입시에서 매년 양산되고 있다. 해당 학년도 입시에 도전하는 재수생이 몇 명이냐에 따라 입시 전략이 달라지고, 사교육이 맹위를 떨친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재수종합학원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대학등록금과 맞먹는 비용이 드는 기숙학원 광고를 허리춤에 내다붙인 버스는 도로를 내달린다. 재수생은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맹점을 상징하는 ‘현재진행형’ 유산이다.

■ ‘백약이 무효’ 재수생 대책 = 역대 정부는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실시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7년의 재수생종합대책. 당시 정부는 날로 늘어가는 재수생을 줄이기 위해 교육과 사회부문으로 나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교육대책의 경우 △1079학년도부터 예비고사 3회 이상 응시자에게 감점제를 실시하고 △1980학년도부터 대학입시에서 고교 내신성적의 반영을 의무화하며 △서울에 밀집된 재수종합학원을 정비·분산하고 △1981년까지 각 고등교육기관의 정원을 증원(대학은 연 12.5%, 전문학교는 연 18%씩 증원, 방송통신대는 현 1만2000명에서 2만명으로 증원)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전문학교를 1979학년도부터는 전문대학으로 개편하고 입학자격을 예비고사 합격자로 제한하기로 했다. 다만 기업체가 추천하는 직장인의 경우 예비고사와 관계없이 야간진학의 문호를 개방했다. 일류대학에 야간과정을 개설하고 방송통신대학에 학사과정을 개설하는 방안도 이때 마련됐다.

사회적인 대책은 능력중심사회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취업정책과 상당히 닮아 있다. 실제 △고졸자의 임금을 대졸자 대비 65% 이상으로 상향 △취업 중 진학기회 확대 △국영기업체 신규채용시 고졸자 시범채용 △고졸자 직업훈련비 융자 실시 등이 주요 사항이었다.

재수생종합대책은 실패했다. 정책이 발표된 직후부터 고등교육기관의 확대가 재수생을 줄이기 보다는 대학진학 가수요(假需要)를 촉발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불타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대학정원의 10% 이상 증원을 오히려 ‘바람’으로 받아들여 활활 타올랐다. 3수 이상 재수생의 대입 점수를 무조건 3점 감점하는 불리함마저 실력으로 극복하자는 재수생들의 투지를 꺾지 못했다. 재수생종합대책에도 1978년 고교졸업자 40만3000명 가운데 취업이나 진학을 하지 않은 '재수·무직 적체인원'은 20만명에 달했다.

■ 대학설립준칙주의로도 못 잡은 ‘재수생’ = 대학진학률 80% 시대를 연 5·31교육개혁도 늘어나는 재수생을 잡지 못했다. 자율과 경쟁, 창의, 다양화를 기치로 내걸고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 틀을 재구성한 ‘5·31 교육개혁’은 일부 부작용도 있지만 대체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했던 교육개혁으로 현재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대학설립준칙주의와 정원의 자율화로 고등교육기관의 수화 대학진학률이 폭증했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 수는 1994년 131개교였으나 준칙주의로 최소 설립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기 시작해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4년제 일반대학은 188개교로 늘어났다.

대학이 늘어나면서 대학 진학률 열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대학진학률은 1994년 45.3%에서 교육개혁이 시행된 1995년 51.4%로 처음 절반을 넘겼다. 이후 2000년 68%, 2005년 82.1%로 크게 증가했으며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2010년에는 79%를 기록하면서 현재는 70% 대에 머무르고 있다.

누구나 대학에 갈수 있는 시대가 열리자, 재수의 중심축이 대입을 위한 재수에서 ‘간판’을 위한 재수로 옮겨갔다.

현재 입시업계에선 서울 강남 고교졸업생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재수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2012학년도 서울지역 고교 졸업생의 재수비율 상위 10개 구는 △강남(76.0%) △서초(68.4%) △양천(56.9%) △광진(55.5%) △강동(55.0%) △송파(52.1%) △서대문(52.0%) △노원(50.3%) △종로(50.1%)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 특구 고교졸업생 절반 이상은 재수를 하는 셈이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강남권 학생들은 재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강남권에선 ‘인서울’ 건국대 이상이 아니면 대부분 재수하고, 잘 나가는 특목고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아니면 재수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강남지역 한 명문고 교장은 “학기초에 재수생 현황 파악 차 유명 재수종합학원에 갔더니 한 클래스에 100명 이상이 특정 학교 학생들이더라”고 전했다.

■ 재수의 변주와 풍선효과…그 밖에 실패한 대책들 = 재수생종합대책과 5·31교육개혁 이외에도 74년 시행한 고교평준화 정책도 재수생 대책의 일환이었다. 교육수요에 비해 고등학교와 대학의 수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고입재수 문제도 심각했다. 이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교 선택권을 없애는 대신 일명 '뺑뺑이'를 돌려 학교를 배정했다. 그러자 고입 재수는 줄었지만 대입 재수가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과외문제와 재수생 누적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시행한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도 마찬가지다. 과외금지와 졸업정원제를 골자로 한 이 조치로 재수생은 일시적으로 주춤했으나, 고등교육 수요의 증가로 대학진학률 자체가 올라가면서 또다시 재수생이 늘어났다. 1988학년도 '선지원 후시험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치열한 대입 눈치작전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으나 진학한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거 재수를 선택하면서 재수생은 큰 폭으로 늘었다. 물론 최근의 쉬운 수능과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도 재수생 감소에는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더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나아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 편입과 각종 고시, 전문대학원은 물론 취업에서도 재수가 만연한 상황이다.

취업재수도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취업재수생은 취업에 실패해 대학을 8학기 만에 졸업하지 못하고 졸업유예제도 등을 이용해 9학기 이상을 다니는 '대학 5학년생'들을 의미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2014년 전국 4년제 대학 9학기 이상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66개 대학에서 9학기 이상 등록한 학생 수는 총 12만여명에 달했으며, 이들이 납부한 등록금만 학기당 최소 600억원이 넘었다.

■ 재수생 양산은 입시제도 탓 아냐 = 거의 모든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재수생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는 데 교육전문가들의 합의가 이뤄졌다. 교육전문가들은 재수공화국의 근본원인으로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대학서열화 △폐쇄적인 엘리트 동문 문화 △진로진학교육의 부재 등에서 찾는다.

인식의 편견은 사실 현실에서 기인한다. 아직도 사회적인 현실이 재수를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수생 문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진학열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임금격차(26.5%)였다. 이어 △권력격차(16.5%) △취업기회격차(19.8%) △결혼기회의 격차(4.5%) 등의 순으로 대학진학열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에서 고졸과 대졸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에 속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고졸임금을 100으로 잡을 때 대졸 임금은 △미국(172) △한국(160) △영국(157) △일본(148) △캐나다(142) △뉴질랜드(117) 순서로 상대격차가 심했다. 177로 정점을 찍었던 2007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굳건한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통계도 여전하다. 로스쿨 1~3기 출신 검사 임용자의 출신대학을 조사한 결과 77.3%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었고, 정부부처 3급 이상 고위공무원 절반이 이들 'SKY' 대학 출신이 차지했다.

정부는 능력중심사회를 국정과제로 내걸고 있다. 이에 따라 스펙중심 채용의 한계에서 벗어나,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평가툴을 활용해 직무능력을 중심으로 채용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올해 진행되는 1만7000명 규모의 공공기관 신규채용 인원 중 3000명을 직무중심 면접 등을 통해 선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