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대표’ 누군지도 몰라" ... "주거비 높으면 학생 구매력 낮아져"

[한국대학신문 이재·차현아 기자] “기숙사를 짓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우리(상가)하고는 관계 없는 이야기다. 어디에 짓는지 위치도 잘 모른다.”

이화여대 앞에서 5년째 가방을 팔고 있는 자영업자 김모씨는 최근 논란이 된 이화여대 제2기숙사 신축에 대해 관심없다는 반응이다. 주민대표로 나서고 있는 일부 보수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 없다고 일축했다. 김씨는 “대학생이 기숙사에 살든 원룸에 살든 상가에는 영향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경희대와 이화여대가 기숙사 신축에 나섰다가 지역주민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동대문구와 서대문구의 원룸 임대업자들은 두 대학이 기숙사를 지으면 지역상권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구청을 상대로 지속적인 민원제기에 나섰다. 그러나 직접 찾은 대학가 주민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올해 3월부터 신촌역 앞에 디저트 프랜차이즈를 개점한 권오일씨는 “신촌동 경기는 학생들과는 상관없다. 신축 기숙사 인근지역이 국지적으로 손님이 몰리긴 하겠지만 그 때문에 일대의 상권이 위축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신촌동 일대의 점포들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권씨는 학생들의 구매력이 날이 갈수록 낮아져 신촌일대의 주요 상업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신 상가의 주요 손님층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바뀐지 오래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등이 밀집된 신촌이 중국에 관광지로 상품화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렸기 때문이다.

동대문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희대와 한국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 밀집한 동대문구 회기동과 이문동, 석관동 일대는 신촌동과 달리 중국인 관광객 등 새 구매층이 유입되지 않아 여전히 학생들이 주요 고객층이다. 그러나 원룸 임대업자들과 점포 상인들의 이해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국외대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지역상권을 위축시키는 것은 이마트 등 대형마트다. 인근 지역에 학생들이 집단 거주하는 기숙사가 생기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비싼 주거비로 학생들 구매력이 떨어지는 점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싼 주거비가 학생들의 주머니를 닫게 한다는 이야기다.

일부 상인은 주민대표로 소개되는 임대업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화여대 앞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성모씨는 “이 일대는 상가번영회처럼 상권을 대표하는 조직이 없다. 이 지역 주민대표로 주장하는 사람은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가 원룸 공급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가격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대업자들의 주장처럼 공실률이 20%대까지 늘었다면 보증금이나 월세가 낮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임대업자들이 투자실패에 따른 손실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킨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다.

대학생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은 지난 2009년부터 크게 늘었다.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 보급정책을 펴면서 지원이 원룸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도시형 생활주택(85㎡미만 주택)을 새로 도입한 정부는 2%대의 저리로 건설자금을 지원하면서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 그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서울시내 원룸은 13만 741가구가 늘었다. 특히 △2011년 6832가구 △2012년 1만 7721가구 △2013년 1만 8200가구가 준공되는 등 3년 새 4만 2753가구가 집중적으로 준공됐다.

그러나 월세 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60만원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경희대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월세가 1만~4만원 정도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학생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실에 따르면 기숙사 신축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경희대와 이화여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각각 7%와 8.4%에 불과하다. 서울소재 대학 평균 1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대규모 대학에 속하는 두 대학의 재학생 규모는 약 5만여명이다. 전체대학 평균으로 보면 20%까지 늘어나는 기숙사 수용률을 고려할 때 경희대와 이화여대 재학생들은 주거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강세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는 “대학가 인근의 졸업생까지 고려하면 여전히 공급량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공실률이 20%에 달한다면 임대업자들이 임대료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것은 임대업의 번성을 위해 학생들을 희생시키라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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