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載亨(顧問)
어느새 국세행정의 중심축이 ‘실용 세정’(?)으로 방향을 틀고 있음을 본다. 종전 ‘서비스 세정’ 우선순위에서 이젠 세수의 효율을 우선시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이라든가, 특히 국부유출을 초래하는 역외탈세 행위에 대한 매서운 감시의 움직임도 대표적인 세정의 선택과 집중이다.
올해 이 분야에 대해 총 1만8천여건 내외의 조사를 통해 총 1조원 이상의 역외 탈세를 찾아낼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 이른바 ‘선박 왕’을 비롯해 5천억원에 육박하는 탈루세금을 찾아내 부과 고지하는 개가를 올린 국세청이다.
탈세기법과 유형, 공개 할 필요 있나
기업은 기업대로 국세청의 냉혈세정에 숨을 죽이는가 하면 다수의 사회계층에선 엄정한 세정운용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국민 정서법’이 가미되어 국세청 당국자들을 한껏 고무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역외 세무조사와 관련, 언론사에 제공되는 홍보자료 역시 그 회수가 잦아지고 있다.
여기에 납세자에 보내는 국세청의 메시지에도 넉넉한 여유와 느긋함이 묻어난다. 허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불필요한 부분까지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아 내심 불안한 구석도 없지 않다.
국세행정의 홍보는 인색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지나쳐도 좋을 것 없다는 것이 세정가의 오랜 전설이다. 함축하자면 “세무행정은 조용 할수록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세정 동향을 보면 너무나 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납세자에게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려야’ 하거늘 아무래도 필요 이상의 ‘유리창 세정’(?)을 지향하는 것 같다. 생각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국세청은 특히 국제거래를 이용, 편법으로 부(富)를 대물림한 몰염치한 사업자들을 대외에 공표하면서 그 탈세유형을 소상히 설명해 주고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홍보는 금물
그 사례 대부분이 전문가들조차 이해가 난해한 새로운 유형의 탈세수법이다. 과연 그 유형의 구체적 방법까지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국세청은 조사요원들의 전문성을 대내외에 과시, 국부유출 유발심리를 사전에 잠재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위험’을 자초 할 수 있다는 역기능적 효과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세금 빼먹으려 머리만 굴리는 일부 예비적 탈세범(?)들에게 ‘지침서’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반면에 그럴 처지가 못 되는 다수의 보통납세자들에겐 납세의식에 부정적인 사고만 심어주게 된다.
최근 들어 국세청이 강조하는 ‘납세자 중심의 조세개념’ 정립 역시도 왠지 어색한 감이 든다. 조세의 개념을 ‘납세자 중심’으로 바꾸기 보다는 세법을 엄정히 집행하는 국세청의 존재를 보다 부각시키는 것이 납세풍토 개선에 보약이 되지 않겠나 싶어서다.
납세자와 과세관청의 ‘상호 협력관계’를 호소하는 국세청의 외침도 너무 가벼운 행동이 아닌가 싶다. 국세청은 아직도 과거의 세법체계와 관행을 답습하여 불성실 납세자가 성실 납세자보다 유리해지는 불공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스스로 개탄하고 있다.
납세자와 키 맞추면 ‘세정권위’ 실종
이를 이유로 납세자와 과세관청이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상호협력 관계’로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논리상 모순이 있어 보인다. 불성실자가 성실자보다 유리한 상황이 된 현실의 책임을 납세자와 똑같이 지자는 얘기로 들린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국자가 드러내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엄격한 의미에서 납세자와 국세청은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보다는 서로의 의무에 충실하고 성실해야 하는 각자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다만 국세청은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불편하거나 어려움이 없도록 행정을 개선해 주면 되는 것이다.
납세자를 국세행정의 조심스런(?) 고객으로는 몰라도 진정한 협력자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자칫 사려 깊지 못한 당국의 언행들로 인해 국세행정의 권위의식이 아닌, 권위 자체가 손상될세라 우려가 된다.
“세무행정은 조용할수록 좋다”― 세정가의 오랜 격언이 귓전에 맴도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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