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상속세 개편 방향이 구체화됐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방송에 출연해 종부세를 초고가 1주택과 주택가액 합계가 많은 다주택 보유자에게만 물리겠다고 밝혔다. 상속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을 고려해 세율을 최고 30% 수준까지 대폭 인하하겠다고 했다. 종부세의 재산세 통합이나 상속세의 유산취득세·자본이득세 개편은 중장기 과제로 거론했다.
통상 매년 7월에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는 만큼 세제 논의는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국회가 열렸고, 여야의 샅바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올해 ‘세법 전쟁’의 열기는 예년에 비해 뜨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월 총선이 끝난 뒤 야당의 한 최고위원이 ‘종부세 폐지’를 주장했다. 누더기가 돼버린 종부세를 이념이 아니라 실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실거주 1주택자 종부세 폐지’로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자던 보름 전 같은 당 원내대표의 발언과 일맥상통이다.
그 최고위원의 주장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을 만했다. ‘개선’에 방점을 둔 원내대표와 달리 ‘폐지’를 주장한 점이 전향적이다.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라며 원내대표가 바로 발을 슬쩍 뺀 것과 달리 “총체적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재차 확인한 점도 고무적이다. 이에 여당 원내대표도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부세 존치·완화, 여야가 합의 도출을
솔직히 ‘종부세 정당’으로까지 불리던 야당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파격적이었다. 이 같은 야당 일각의 종부세 폐지·완화론은 아마도 지난 대선의 패배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였다는 인식에 이어 이번 총선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종부세라는 세금이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이라는 분석에서 나왔을 것이다.
주로 종부세 납부자가 많은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종부세 완화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략적인 접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대선이나 총선에서 민심을 확인한 결과로 본다면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종부세 부담을 많이 줄여주기는 했다. 1주택자 기본공제액을 12억원으로 올리고 공시가 현실화율 상승은 억제했다. 그래도 지난해 1주택자 종부세 대상은 11만 명이 넘는다. 집 한 채, 누군가에겐 투기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겐 전 재산이다. 투기의 대상이라면 정부 개입의 여지가 생긴다.
정부가 2005년 종부세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질서를 흔드는 부동산시장의 ‘나쁜 손’은 누군가의 꿈을 꿈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입이 징벌로 변질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종부세는 어느덧 징벌적 과세로 변한 셈이다. 종부세가 정점을 찍었던 2022년 주택분 종부세를 낸 사람만 119만5000명에 이르렀고, 1주택자나 은퇴생활자, 중산층에까지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투기를 막는다는 종부세는 오히려 중산층과 무주택 서민을 때렸다.
보유세 증가는 “전세보증금을 29.2~30.1%, 월세는 46.7~47.3% 밀어 올려 임차인에게 전가 된다”(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팀)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어느 선진국에도 종부세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프랑스에 부유세가 있지만 ‘순자산’이 과표인 데다 최고 세율도 우리 종부세의 4분의 1 수준이라 단순 비교는 무리다.
한편 지난 5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종부세에 대해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주택 공시가격 합산 금액이 6억원이 넘는 이를 납부 대상으로 명시한 옛 종부세법 7조 1항, 종부세 과세표준을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8조 1항 등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종부세법은 2005년 시행 당시부터 조세저항이 커지면서 종부세에 대한 소송이 줄을 이었었다. 2008년에도 헌재는 종부세법 중 세대별 합산 조항에 위헌, 1주택 장기보유자 등에 예외를 두지 않은 주택분 종부세 부과 규정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적도 있다. 그러나 종부세법 자체는 합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종부세에 대해 재산세와 이중과세라는 인식과 조세 부담 능력의 한계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종부세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납세자가 2023년에만 6000여 명에 이르렀고, 공시지가 현실화 등 종부세 강화를 주장해 왔던 거대 야당에서도 실수요자인 1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의 문제는 법리로 정당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이제는 정책상의 문제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종부세가 위헌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종부세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종부세를 존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동산 조세제도의 바람직한 방향은 큰 틀에서 보면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낮춤으로써 가격안정과 거래의 활성화를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종부세 존치 여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둘째, 부과 대상을 재산세로 단일화하는 방안이다. 보유세는 부동산 가치에 따라 부과하므로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저해하지도 않고, 사회적 손실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세금을 회피할 방법도 크게 없다. 즉 종부세를 기존의 재산세와 통합해 세목을 조정하고, 보유세인 재산세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세금 관련 정책과 제도는 가능하면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복잡하면 설득도 어렵고 국가 경제 측면에서 행정력과 비용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개편, 부자 감세 프레임 극복해야
시대와 불화하고 있는 건 종부세뿐이 아니다. 상속세도 이젠 부자만 내는 세금이 아니다. 상속세 공제 한도는 28년째 10억원이다. 이젠 서울 시내 웬만한 아파트를 상속받아도 상속세를 내야 한다. 또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지만 기업 최대주주는 할증이 붙어 60%다. 과도한 상속세는 대주주가 주가 상승을 꺼리게 만들어 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4배에 이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를 두세 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징벌적 세금이 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견·중소기업 가운데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폐업하거나 사모펀드 등에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상속·증여세를 폐지한 싱가포르 등으로 옮겨가는 기업인도 늘고 있다.
게다가 과도한 상속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뜩이나 세율이 높은데 주가마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이 커지다 보니 대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꺼리는 탓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와 관련해 최대주주 할증 평가 폐지와 가업상속 공제 대상 확대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세법개정안에 담겠다”고 밝혔다.
상속세 최고 세율을 60%까지 높이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상속세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가업 승계와 증시 밸류업의 걸림돌이 되는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상속세의 최대주주 할증을 폐지하고 상속자산 전체가 아니라 각각의 자녀가 실제로 상속받는 유산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야당이 상속세 개편에는 소극적이지만 종부세 완화와 마찬가지로 중산층의 과도한 세 부담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여야가 합리적인 해법을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부자 감세’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숲을 조망하는 지혜로 합의 도출을
위에서 살펴본 대로 세제 개편이 현실화하면 세수감소는 불가피하다. 국세 수입은 지난해 56조원의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도 3월까지 2조2000억원의 세금이 덜 걷혔다. 1분기 역대급 세수 펑크를 기록했다. 세입이 줄어 한국은행에서 45조원 넘는 돈을 빌려 쓰는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상속세를 줄이면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하지만 종부세·상속세 등 현실과 맞지 않는 개별 세금의 불합리는 고쳐야 한다.
우선은 여야의 합의 도출이다. 그리고 전체 세제 개편의 큰 틀에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낡은 세금을 고쳐 각각 최적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그림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늘어나게 돼 있는데, 재정이 어려워지면 결국 증세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정치권은 해묵은 과제였던 종부세와 상속세를 개편하면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조망하는 지혜를 국민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 경영학박사
• 수필가
•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