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글쎄요, 그게 될까요?”(밸류업, 금투세, 법인세, 상속세....)
윤석열 정부 출범 2년 동안 잃은 것 중 가장 뼈아픈 대목을 꼽는다면 ‘불신’, 그것도 정책불확실, 정책 불신일 것이다.
둘로 ‘쫙’ 갈라진 지난 정부의 반목과 갈등에 지친 국민이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정치 신인 윤석열에 호응하며 그에게 국정을 맡기는 위험(?)을 감수한 것은 분열에서 화합으로, 불통에서 소통으로 가라는 명령이었지만 불과 2년이 채 되지도 않은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상처는 더 곪고 깊어졌다.
단지 외양으로만 본다면 분열과 갈등의 아픔에 걱정하고 흥분했던 국민들의 찡그렸던 표정이 요즘은 아주 덤덤해졌다. 무표정해진 것이다. 이는 미움보다 무섭다는 무관심의 구체적 표현이고, 깊어지면 곧 무서운 ‘액션’으로 비화하는 우리 국민 특유의, 일종의 행동모드 전조다.
집값 폭등에다 롤러코스트 식 실험적 경제운용에 폭발했던 경제적 불안심리를 윤 정부가 정상으로 돌리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안착시켜 줄 것으로 국민은 기대했지만 이 역시 ‘되는 게 없는 것의 연속’ 시리즈를 쓰고 있다.
윤 정부가 국민의 뜻을 거스르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어떻게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으며, 찬반 이견은 있지만 어느 정도 국민적 동의는 얻어 놓고도 있다. 길은 알고 있고 나름 그 길로 가는 계획은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한 걸음 진전이 없다. 되레 뒤로 밀려나고 있고, 국제정세나 글로벌 경제가 난리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 대비는 고사하고 현실 커버에도 주먹이 숭숭 뚫리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고, 불신하고, 결코 체념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표정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 총선에서 아주 ‘쬐끔’ 의사표시를 한 정도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실행 능력이고, 실행 실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 길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가는 능력과 실력이 안 된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민 것이 변명이고, 핑계다. 껄끄럽겠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평가다.
윤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정책의 화두로 ‘경제 활력’을 꼽았다. 기업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운동장을 제대로 만들어 주면 죽기 살기로 뛸 것이고, 그것이 동력이 돼 우리 경제의 경쟁력과 내실이 챙겨질 것이라는 처방이었다.
출범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틀린 진단은 아니었다. 코로나19에다 부동산 가격 폭등, 지난 정부의 어설픈 각종 정책이 난무하면서 바짝 엎드렸던 기업들의 분위기를 전제한다면 숨통을 틔우고 활력을 북돋워 주는 강력한 견인은 필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율 대폭 인하를 필두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숨통을 죄던 부동산 세금을 크게 내려 활로를 뚫으려 했다. 당시 기업들은 묵은 과제를 서슴없이 내 놓으며 큰 기대를 걸었고, 다소 후퇴하는 일부 정책들에 대한 국민적 우려도 있었지만 새 정부가 해 보겠다는 의지에 기대를 걸며 진행됐다.
민주국가에서 크게 달라지는 정책에 대해 이견과 반대가 없을 수는 없다. 당연히 야당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고, ‘부자 감세’ 논리 등이 폭풍처럼 정책의 길을 가로 막았다.
출범 첫해 국회는 법인세율 인하 공방으로 연말까지 뜨거웠다. 결과는 어정쩡한 법인세율 1%로 인하로 마감됐고 기업들은 잔뜩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법인세율은 첫 작품이어서 손이라고 댔지만 이후 화려하게 발표됐던 정부의 각종 정책은 결과를 따지기가 낯 뜨거울 수준이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된 게 없는 ‘임전유퇴’(臨戰有退) 그대로다.
Ⅱ
문제는 ‘일 머리’를 모른다는데 있다. 정책을 추진하려면 입법이 기본인데 윤 정부는 입법에 관한한 태생적 한계가 있었고 이를 헤쳐 나가는 능력이 크게 부족했다.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쏟아냈고 연일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알렸다. 장관은 물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신 있게 대국민 정책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다 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윤 정부가 핵심정책으로 내세운 것이 법으로 확정돼 실행에 들어간 것은 손에 꼽힐 정도다.
정책에 대한 야당 반대논리에 대해 비난이나 동조를 하려는 선입견은 전혀 없다는 점을 전제한다. 다만, 정부의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어떤 필연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정부 정책은 국회에서 심각한 대립을 했고, 거대야당 국회에서 좌절되거나 정반대의 야당 주도 법안이 통과돼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극단적 반복이 이어졌다. 공언했던 협치는 고사하고 흔한 대화와 타협조차 아예 실종되는 현상이 잦았다.
국민 입장에서는 한두 번도 아니고 ‘(정부 주장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결과가 뭐냐’는 물음이 당연히 나온다. 결국 지난 2년 동안 정부와 국회의 반목은 아예 고정이 되다시피 했다.
윤 정부는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카드로 총선을 통한 변화를 강력히 갈망했다. 연초부터 무려 24회나 열렸던 ‘그 많았던’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와 전 부처의 강력한 현장출동 행정에도 불구하고 되레 악화된 결과로 나왔다.
국세청장을 비롯한 지방국세청장들까지 예외 없이, 유례없이 수출기업 세정지원 등 민생·민심 홍보현장에 뛰어 들어 ‘정부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돕는다.’며 ‘외도 아닌 외도’(?)에 나설 정도였다. ‘역대급 세수펑크가 나는데 국세청장이 왜 거기에 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윤 정부는 이유를 떠나 정책을 법으로 만들어 실행으로 국민에게 드리는 방법과 기술을 제대로 몰랐다는 의미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금쪽같은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귀착된다. 오늘 현실이다.
Ⅲ
이 상황으로는 당장 올 세법개정도 걱정이다.
기획재정부는 7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해야 하지만 솔직히 세법개정안에 담아야 할 내용을 염두에 둔다면 바로 눈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윤 정부 3년차를 맞아 그간 경제정책 기조를 정교하게 세법에 담아야 하는데 이미 예고된 상속세 개편, 기업세제 완화, 조세특례제한법의 대규모 손질 등 핵심 정책입법은 ‘될까요?’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화급하게 풀어야 할 정책과제와 밀려드는 현안을 우선순위로 나눠 세법에 반영해야 하지만 개별세법은 고사하고 정치역학 상 정책기조 마저 충돌·수정해야 할 분위기다.
윤 정부를 심판한 총선 민심이 반영된 제22대 국회가 세법개정안을 처리하게 되는데 지난 2년 동안 해오던 방식으로는 도저히 먹힐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던져 놓고 거부하면 시행령으로 땜질하거나 포기·연기할 수도 없다. 거센 민심의 후폭풍과 기업들의 이반도 걱정해야할 대목이다.
대통령은 총선 결과가 나오고 ‘이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야당 대표도 만났다. ‘지난 2년 동안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냐’는 반문도 있지만 차치하고 더 심하게 고착된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어떤 정치를 어떤 방법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게 쏠리고 있다.
정치는 올바른 목표를 정하고 그곳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 과정 모두가 정치다. 맞다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가르치기보다 대화와 설득, 이해를 통해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진도 가능하고 돌아서라도 도착해야 한다. 아는 것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게 정치다.
지난 2년 동안 윤 정부가 접두사처럼 써 온 ‘그러나’ ‘하지만’을 계속한다면 민심은 썰물처럼 빠져 나갈 것이고 성공·실패를 떠나 국가와 국민이 불행해진다.
정책을 입법으로 녹여 국민 앞에 내 놓으려면 윤 대통령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요하다. 국민은 결과로 평가한다. 물론 그 과정도 꼼꼼하게 챙겨 새겨두는 습관이 있다.
입법의 기술과 소통의 정치, 그리고 국민에게 고백했던 초심을 다시 새겨 실천해야 한다. 정책이 신뢰를 잃은 것은 결코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윤 정부 출범 2년도 안 돼 만들어진 결과이고, 안타깝지만 시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