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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연좌제’와 ‘주홍글씨’…한국인 법 감수성의 열쇠말
[데스크 칼럼] ’연좌제’와 ‘주홍글씨’…한국인 법 감수성의 열쇠말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1.10.14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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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퍼 장용준의 비행이 왜 장제원 의원 국회의원직 사퇴 사유가 되나?
— 과거 잣대로만 세정협의회 볼까?…풀뿌리 상공회의소 노릇 계속해야
언론도 성인 장용준을 꼭 '장제원의 아들'로 부르고 표기한다. 한국인의 법 감수성의 중요한 '연좌제'적 특성이다. / 사진=연합뉴스
언론도 성인 장용준을 꼭 '장제원의 아들'로 부르고 표기한다. 한국인의 법 감수성의 중요한 '연좌제'적 특성이다. / 사진=연합뉴스

 

아주 여러 사람들이 불편해 할 만한 두 종류의 얘기가 있다. 하나는 한쪽 진영의 사람들이 많이 불편할 얘기이고, 다른 하나는 진영을 떠나 국민 대다수가 은근히 불편할 얘기다.

먼저 래퍼 장용준씨 얘기다. 그가 음주운전에 수사방해, 경찰관 폭행까지 해서 구속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힘 장제원 국회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을 했다고 한다. 용준씨가 장 의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 정말 딱하다. 여전히 조선왕조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이 고용한 공무원들을 잘 감독하고 행정부 정책과 사업을 잘 감사하라고 제 손으로 국민의 대표를 뽑아 놓고, 대통령에게 “저 인간의 국회의원직을 파직하여 주시옵소서”라며 상소를 올리는 격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 품계석에 머리라도 찧을 기세다. 국회 홈페이지에서 호소한다면 모를까, 어리석다 못해 무섭다.

이 분들이 딱한 다른 이유는 ‘연좌제’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나이 스물 하나, 이미 성인이 된 장용준씨의 범죄 때문에 아버지 장제원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메타버스 타고 디지털전환의 혁신 터널을 지난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그 한국인들이 맞나 싶다.

같은 논리라면,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서 외교 스캔들을 일으킨 마약쟁이 전력의 아들을 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애당초 백악관 근처에도 못 갔다. ‘웬수’든 ‘아픈 손가락’이든, 미국인들은 그의 아들과 상관 없이 바이든을 국가 지도자로 뽑았다. 맞수인 트럼트 진영에서도 아들을 볼모로 바이든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미국산’을 대체로 다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왜 이런 것은 못 배우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대다수 국민이 싫어할 ‘불편할 진실’이다. 여당 대선후보로 나섰다가 중도 사퇴한 김두관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국세청 일선 세무서 관내 사업자들로 구성된 세정협의회가 전직 세무서장을 고문으로 위촉, 돈을 걷어주면서 해당 세무서에 세금 로비를 벌이는 창구로 활용했으니, 범죄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무서장으로 일하다가 퇴직 후 한 직장에서 일하던 현직 세무공무원들에게 세무 로비를 벌이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로비가 통하는 시스템인지, 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건이 뒷받침 돼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 추론이 선행돼야 진실의 단서와 닿을 수 있다.

세리(稅吏)에 대한 관념은 멀리 고대로부터 비교적 부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과 같은 일부 선진국들이 ‘완전히 투명한 정보공개’라는 기초규칙(Ground Rule)을 통해 전통적 세리를 친절한 납세자의 조력자로 탈바꿈 시켰지만, 한국에겐 아직 먼 나라 얘기다. 이호예병형공 6조 6방이 칸막이를 치고 저마다 공공정보를 독점, 행정권력의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

법령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전문자격사 도움 없이는 애당초 정확히 지키기가 불가능하게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당연히 많은 수임료를 주면 원하는 수준의 양형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최고 엄격한 양형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33년 전 500만원을 훔친 자신보다 70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의 형기가 더 짧은 점에 분노해 탈옥,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고발한 뒤 비지스의 홀리데이(Holiday)를 들으며 죽어간 지강헌이 2021년에는 없을까.

이런 정황 속에서 오늘날 “세리는 여전히 부패한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2만여 국세공무원들은 국민 재산권을 침해할 운명을 타고 났다. 국가예산으로 어떻게 하면 한푼이라도 국민에게 더 줄지를 고민하는 복지부, 산업부 공무원들만큼 천사의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고약한 운명이다.

하지만 북유럽국가가 오랜기간 노력한 결과 그 나라 세리는 신뢰받는 납세자의 조력자로 탈바꿈 했다. 한국도 20여년 전에 견줘 사뭇 놀랍게 투명화 됐다. 국세행정 전산화와 중첩적 감사구조가 갖춰진 덕분이다. 이를 뚫고 세무비리를 저지를 용기와 능력을 지닌 국세공무원이 없지 않겠지만, 과거만큼 즐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김두관 의원의 지적이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지닌 이유는 세무서 세정협의회로부터 1년간 고문료를 받는 전직 세무서장이 과거처럼 법을 넘어선 로비를 하기 매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정협의회 회원들을 위한 대관업무 개념인데, 노동부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규제부처 출신 공무원들은 1년 한도 없이 평생을 이런 대관업무를 해도 그다지 눈총을 받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연좌제’와 ‘주홍글씨’의 유구한 전통을 쉽게 부인하기 어렵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장제원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내려놓는다면 한국인의 법 감정에 남아 있는 ‘연좌제’가 한판승을 거두는 것이다. 그를 지지하든 말든, 그는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다. 그가 아들의 비행으로 국회의원직을 물러나는 것은 민의도, 민주주의도 뭐도 아니다. 같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아무렇게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 ‘연좌제’는 보수나 진보의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다.

세무서 세정협의회는 폐지할 필요 없다. 지역 사업자들이 회비를 걷어 세무서 행정을 파악하고 세무공무원과 어려운 점을 상의하며,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데 쓰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납세자가 적법하게 자신의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정보를 취득하고 협의하며, 소통하는 데 쓰는 돈을 싸잡아 ‘뇌물’이나 ‘로비자금’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하늘이 내린 권리로 여겨지는 국가의 재산권 침해에 맞서 납세자가 정당한 방식으로 대항력을 갖추는 비용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풀뿌리 상공회의소 역할로 보면 된다.

대한상공회의소 임원단은 국세청장과 만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대한상의 최태원 회장이 국세청장을 만나 세법이 허용하지 않는 세무 청탁을 하고, 국세청장이 그 청탁에 따라 불법・위법적 행위를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청탁을 적발하고 입증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임이다.

세정협의회는 코로나19로 급격히 위축된 공구상가, 가구공단, 전통재래시장, 먹자골목의 아픔과 고통을 관할 세무서장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하는 창구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불법이 허용되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대한상공회의소의 풀뿌리 민간기업조직으로 기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과거 법으로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해줬던 세무공무원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함께 밥과 커피를 마시고, 심지어 골프를 함께 즐긴 납세자라고 해도 세무공무원이 그들을 위해 해줄 게 별로 없는 시대로 향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쭈욱 계속돼야 한다. 사회가 깨끗해진다는 것은 그렇게 이익이 나눠지고, 이해득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 마음이 가벼워 지는 쪽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한 세법, 촘촘하지 못하고 공무원 재량이 인정되는 세무행정을 뜯어고치는 게 급선무다. 세무서장과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고 소통한다는 이유로 세정협의회를 없애는 것은 현실이 엄혹하다고 그저 눈을 질끈 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날 때부터 선진국은 없다. 선진국에 무슨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익을 사익화 하는 폐단을 속속 찾아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만한 시스템으로 개선해 나가다 보면 그 선진국, 곧 만날 수 있다. 단, 뚜벅뚜벅 쉼 없이 가야 한다.

그런 시대를 당당하게 맞으려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연좌제’와 ‘주홍글씨’부터 지워야 한다. ‘주홍글씨’는 조상의 업보를 후손에게 덧씌우는 4차원적 ‘연좌제’다. ‘연좌제’는 공동체의 근본 문제 해결 대신 남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군중들의 잔인한 ‘주홍글씨’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김대지 국세청장에게 세정협의회가 세금 로비 창구가 되고 있다며 대책을 물었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김대지 국세청장에게 세정협의회가 세금 로비 창구가 되고 있다며 대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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