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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이제 국민도 ‘나랏돈’ 감각이 무뎌졌다
[정창영 칼럼] 이제 국민도 ‘나랏돈’ 감각이 무뎌졌다
  • 정창영 기자
  • 승인 2021.09.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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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본지 주필)

“이정도면 개그다. 그것도 속이 보이는 억지 코미디이고, 시청자(국민)를 짜증나게 하는 일종의 민폐다.”

불과 하루 사이에 ‘나라 곳간이 텅 비어 간다.’고 했다가 그 뉴스가 국민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돌연 ‘선진국에 비해 재정이 아주 양호하다.’는 황당한, 둘 중 하나는 ‘가짜뉴스’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국회 답변이다.

그는 나름 단호한 표정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부동산 정책이든, 재정이든,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이 논란의 중심에 설 때면 매번 단호한 어조와 결기어린 굳은 표정으로 설명하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재정운용과 관련한 홍 부총리의 오락가락 행보는 재정 안정성은 물론 구체적 성과와 효율에서 심각한 차질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핵심은 재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상실이다. 돈 보다도 뼈아픈 대목이다.

당장 코로나19 재난지원금 현장에서 부작용이 분출되고 있다. 재정지출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분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치적 이해득실과 맞물려 재난지원금이 결정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2019년 건강보험료 기준 전 국민 88% 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되자 제외된 12%의 불만과 이의제기가 폭발적이다. 당장 코로나 이후 현실반영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왜 88%냐?’는 질문에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면서 좌표가 찍히고 불공정에 대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아니 답변은 했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고 박완주 민주당 정책의장은 곧바로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며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 지원금을 받도록 조치하는 것이 신속 지원의 최대 과제”라고 밝혔다.

박 의장은 한 걸음 더 나가 “88%보다는 조금 더 상향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 90% 정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에다 “(이번 재난지원금)추계할 때도 딱 88%에 맞춰놓은 게 아니라 약간 여지가 있기 때문에 1~2%포인트 정도는 차질 없이 지급할 수 있게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까지 설명했다. 이번 예산편성이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이어 재난지원금 지급 가이드라인은 90% 확대로 급선회 했다. 세금 3000억 원 가량이 더 들어가는 일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판단이 모호하면 가능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말로 불만제기 국민에게 강한 암시와 방향을 확정해 줬다.

물론 재난지원금의 속성과 현실을 감안할 때 긴급하고 신속한 집행이 불가피한 특성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확정된 정책을 집행하면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다면 신뢰는 고사하고 부작용이 엄청 노정된다는 점이다. 당초 80%에서 88%로, 다시 90%로 바뀐 데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일찍 ‘전 도민 지급’을 결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렇게 원칙이 바뀌고 갈리다 보니 국민 불만과 항의가 이어지고 무엇보다 항의 한다고 이미 정한 기준을 쉽게 뒤집는다면 이미 정상적인 집행 자체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자 결론은 한 가지. 세금 풀어 더 주고 불만을 잠재우는 일이다.

“88%에 불만이 많으니 90%까지 지급하면 되나. 그러면 나머지 91~92%는 가만히 있겠냐?”, “우기면 주는 건가요? 이의신청하면 주고, 안 하면 안 주는 식? 국정 운영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어서 됩니까?”, “이 불필요한 행정비용과 갈등은 어쩔 건지?”.....이번 재난지원금 파장에 의견을 올린 국민들의 글이다.

과세구간은 물론이고 경계선 운용이 기본구조로 돼 있는 법이 세법이고, 그 행정이 국세행정이다. 이런 식의 고무줄 국정이라면 앞으로 과연 세금징수가 가능할까? 속도위반 범칙금을 국민에게 물릴 수 있을까? 걱정을 넘는 우려다.

모두가 어렵고 비상시기라는 데도 세금은 ‘쓩쓩’ 들어온다. 세수미달은 고사하고 초과세수로 세입기관의 ‘콧노래’(?)를 듣는 듯하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국세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조원 넘게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월 국세 수입을 223조7000억원으로 집계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55조1000억원 증가했고 이 기간 국세 수입 진도율(연간 목표 대비 국세 수입 비율)도 71.2%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2%포인트 높아졌다.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경제계의 양극화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실적 좋은 기업들이 세수를 주도했다. 법인세가 41조7000억 원, 부가가치세가 57조3000억 원으로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법인세는 10조9000억 원, 부가세는 9조원을 더 거뒀다.

부동산 광풍 속에서 이 기간 양도소득세도 1년 전보다 9조1000억 원을 더 거뒀다. 여기에 증권거래세, 상속·증여세도 가세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지난해 미뤄 준 세금이 올해 들어 온 요인에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 유족의 상속세 납부 등 우발세수의 영향도 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연말로 갈수록 국세수입 증가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주요 세목의 신고가 끝난 데다 부동산 거래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증시의 거래대금도 1년 전보다 크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한 것도 국세 수입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세수호조 마감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세금이 ‘척척’ 들어오고 있지만 나라살림에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지난 7월 국가채무는 914조2000억 원이었다.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900조 원을 훌쩍 넘은 것이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열심히 세금을 내고는 있지만 나라살림은 빚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재난 상황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살피고 따질 일이며, 두 눈 부릅뜨고 국민들이 지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은 휩쓸려 오락가락 하고 있다. 심각하다.

이제 국민들도 나랏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한동안 국가에서 지급하는 복지 지원에 대해 이제 우리도 살만해졌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거 나까지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했던 국민들조차 ‘국고지원은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급선회 했다.

‘내가 조금 희생하고 양보해서라도 소중한 국가공동체를 알토란 같이 탄탄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살림살이가 웬만한 국민들조차 악착같이 나랏돈 수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흐름은 현실로 자리 잡았다. 재난지원금 반납은 동화 속 미담으로 사라졌다. 이유를 넘어 여당 국회의원조차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빠진 것을 섭섭해 하는 세상이다.

시작으로 돌아간다. 재정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어제는 나라 곳간이 텅 비고, 오늘은 아주 양호한 것일 수는 결코 없다. 악착같이 밀고 나가지만 주요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단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세금은 결코 화수분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만약 국가재정의 ‘신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일에 이미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됐나.

정창영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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