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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관세평가분류원 청사를 보라, 누가 정부 믿고 세금 내겠나
[정창영 칼럼] 관세평가분류원 청사를 보라, 누가 정부 믿고 세금 내겠나
  • 정창영 주필
  • 승인 2021.05.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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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체험이 답이다. 직장인 A는 그동안 뉴스에서만 접했던 ‘세금폭탄’을 체험한 뒤 주변에 스스로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세금은 신성한 것이고 국가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학창시절의 주입식 교육 결과물을 그는 요즘 실감하는 중이다.

사실 그는 ‘세금폭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내용은 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세금을 냈을 뿐이다. 다만, 그동안 회사에서 알아서 떼고 주는 근로소득세 정도만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그가 지난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 십 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조그만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큰 돈’을 납부하게 되자 세금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진 것이다.

세무사에게 의뢰해 양도세를 신고하고 수억 원을 현금 납부하면서 그는 ‘세금을 이렇게나 많이…’하며 놀랐고, 마음 한쪽에서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뭔가 모를 ‘강한 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동안 근로소득세 납부가 전부였던 그가 수 억 원의 현금을 직접 국가에 자진납부하면서 세금에 대한 상식과 인식이 체감된 것이다.

그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정치권에서 국가 예산을 ‘쉽게 마구’ 쓰는 것을 보면 가슴 속에서 과거에는 없었던 일종의 분노가 일어난다고 토로한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에서부터 ‘국가예산 1조원이면 1억 원씩 1만 명이 세금을 내야하는데…’로 후다닥 계산이 서는 습관도 생겼다.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세계적인 기업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내는 십 조원이 넘는 상속세가 뉴스에서 난리지만 쓰기로 말하자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나 기본소득의 1회용으로도 모자란 규모다. 이것이 세금이고, 재정이다.

세금은 지금 국민적 관심이자 주시의 대상이 됐다. 개인이고, 법인이고 세금에 대해 아주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에 없던 이 현상의 원인은 세 부담이 늘었고, 이 과정에서 세금 징수와 사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떡을 친’ 부동산 세금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맞은 데다 변변한 시행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가는 퇴로를 찾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급증한 세 부담이 국민 소득 증가 수준을 크게 뛰어 넘는데다 세율과 공시가격 인상이 동시에 덮쳐 뒤죽박죽이 된 채 현장에서의 수용이 아주 어렵게 됐다.

정부는 아직도 무리한 증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올 종합부동산세 주택 분 납부총액이 6조530억 원, 재산세 주택분 납부총액이 5조9822억 원에 달해 주택보유세 규모가 모두 12조352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주택 보유세 4조4458억 원과 비교하면 4년 사이에 무려 세 배 가까이 세금이 폭증한 것이다. 어찌 보면 조세저항은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다 조세정책 운용의 핵심에 정치논리가 깊숙이 개입하는 바람에 세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진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세금에 있어 ‘신뢰’는 외양상 표시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금은 신뢰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국민적 믿음이 절대적이다. 국민재산권과 직결되는 세금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편 가르기 식 정쟁에 이용된 상황은 전문가는 물론 납세자들도 할 말을 잃게 했다.

셀 수조차 없이 쏟아낸 땜질식 조세정책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자 부랴부랴 핵심내용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퇴로작업에 돌입했는데 그마저도 기준을 두고 백가쟁명식 주장이 난무해 뭐가 뭔지 헷갈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참사가 조세정책의 참사로 그대로 연결돼 이래저래 국민들만 쓰디쓴 맛을 강요받고 있다. 말 그대로 정책은 온 데 간 데 없고 세금만 남은 꼴이 됐다. 이러니 국민이 믿겠는가?

시장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세금정책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부동산 세제로 연결되지만 사실 급하기로 말하자면 기업 세제도 빼 놓을 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달 국내 글로벌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률이 경쟁국들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구체적 내용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처럼 최근 경제 단체들이 기업 세 부담 경감과 규제완화를 적극 건의하는 것이 그저 엄살이 아니라는 것은 통계가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중 현재의 법인세 부담은 목전의 과제다.

실제로 한경련이 지난 2018∼2020년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3000억 원을 초과하는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법인세 부담률을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률이 평균 27.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의 16.3%는 말 할 것도 없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일본과 중국, 독일 역시 각각 27.2%, 24.2%, 22.2%로 미국보다는 높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 법인세 부담을 보면 보다 선명해진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삼성전자(27.7%)가 애플(14.8%)이나 샤오미(8.0%)보다 훨씬 높은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고, 2차전지 분야에서도 LG화학(27.6%)이 중국의 CATL(12.4%)에 비해 법인세를 2배 이상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의 핵심 품목인 반도체도 정부가 급하게 종합지원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동안 삼성전자(27.7%)가 인텔(13.0%)이나 TSMC(11.5%)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법인세 부담을 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바이오 분야 역시 셀트리온(20.5%)이 바이엘(13.9%)이나 존슨앤드존슨(12.9%), 화이자(2.2%)보다 훨씬 높은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높은 것은 단지 세 부담 문제를 넘어 결국 기업경쟁력으로, 국가경제경쟁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부자증세의 연장선에서 강화된 우리의 기업관련 조세정책 역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도 어렵고 힘들게 세금을 걷고 있다는 점은 국민들도 알고 있다. 다만 어렵고 힘들게 거둔 세금인 만큼 알뜰하게 써야 한다는 주문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세금의 사명과 숙명이 본래 그런 것이고 제대로 거두고 잘 쓰는 것이 국민과 정부가 한 약속인 만큼 이는 곧 신뢰의 밑천이 된다.

가뜩이나 눈총을 받고 있는 정부 재정운영에 급기야 결정적으로 불신의 불을 지핀 ‘사건’이 터졌다. 세종시에 지어진 주인 없는 관세평가분류원 신축청사는 우리나라 재정사에 지워지지 않는 불신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행정안전부와 관세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힘들게 거둔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알게 된 국민들은 지금 분노 그 자체다. 이런 상황이라면 세금의 국민적 신뢰를 논한다는 것 자체의 의미가 없어진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표풀리즘’으로 비난받는 각종 지원금과 복지 관련 재정집행이 세금낭비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지만 이번 ‘관평원 사건’에 비하면 애교수준이 됐다. 정부의 세금 지출이 이 지경이라면 어느 국민이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내려고 하겠는가.

이것은 ‘실수’가 아니다. 일종의 재정 테러다. 국민 세금을 좀 먹고 조세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세금 내는 국민의 민심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정창영 주필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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