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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로나19 불황보다 무서운 한국의 대기업병
[데스크 칼럼] 코로나19 불황보다 무서운 한국의 대기업병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0.05.11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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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와중에 대기업에만 대출해준 상위 4대 은행들
- 대기업 “기간산업 붕괴” 호들갑…그렇게 키운 정부‧은행
- 바이러스의 교훈, “소수 대자본에 맡긴 경제, 지속 불가”

주말에 ‘말로만 듣던’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 매장에 처음 가봤다. 한국의 대도시 외곽의 외국유통회사 매장에서 ‘말로만 듣던’ 스웨덴을 새삼 발견했다.

이케아 매장은 스웨덴 상공회의소 소속 기업들을 ‘통째로’ 옮겨 놓은 느낌이었다. 가구와 주방용품, 침실용품 등은 물론이고 먹거리와 의류 등에서 스웨덴의 천재적인 산업디자인 수준과 ‘디테일에 강한’ 면모가 여실히 묻어났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일부 식품브랜드를 빼면 이케아 빼고는 죄다 중소기업인 것 같다. 자그마한 가구 장인들의 아이디어가 브랜드로 정착해 저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그룹 ‘아바(ABBA)’와 ‘노벨상’만으로 지구촌을 ‘데리고 노는’ 인구 1000만 강소국의 면모를 제대로 봤다.

스웨덴과 벨기에, 폴란드 등 동서남북 유럽 국가에서 수입된 과자를 먹어봤다. 속이 알차다. 기업의 탐욕이 느껴지지 않고 엄마의 정성이 느껴질 정도다. 이들 나라에서 싱싱한 과일 값이 한국의 20% 수준까지 낮은 경우도 허다하다.

무슨 차이일까. 유럽의 성공한 중소기업들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접하면 가족 구성원이나 절친한 지인들이 제공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느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한국의 대기업은 잠자코 있어도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을 자신들의 이윤극대화 함수의 변변찮은 변수로 치부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요란한 겉치레와 외형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이해관계자들을 깔보는 뉘앙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번이 아니라 30번을 90도 인사 해도 그 뉘앙스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의 이런 볼썽사나운 ‘시대착오적’ 태도는 사실 정부와 은행들이 부추겨왔다.

한국의 상위 4대 은행들이 국내 대기업들에게만 대출을 해와 정작 꼭 필요한 중소기업들에게는 대출해줄 돈이 없다는 소식을 들으니 부아가 치민다.

금융가에서는 “올 1분기 대형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을 큰 폭으로 늘리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4대 은행의 올 1분기 대기업 대출은 91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6% 넘게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은 2.4%에 그쳐 대기업 대출 증가폭이 중소기업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이 대기업 대출 편향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 1분기 대기업 대출은 14.4%, 중소기업 대출은 1% 증가에 그쳤다고 한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6배, 우리은행은 5배 정도 대기업 대출에 쏠린 것으로 전해졌다.

상위 4대 은행들은 1분기 전체적으로 작년 말 잔액 대비 2~4% 대출을 늘렸는데, 대기업 대출을 두 자릿수 늘렸다. 중소기업 대출은 총액 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1~3% 증가에 그쳤다.

기자는 앞서 칼럼에서 코로나19발 경제 타격은 2008년 리먼 사태 당시와 같은 구조적 원인이 아니라, 재난으로 정상적 경제활동이 ‘일시 연기(temporary pending)’된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 대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GS와 현대, SK 등 한국의 대표 정유사들은 겉으로 탈(脫)석유 어쩌고 하면서도 미국이나 중국 정유회사들처럼 1분기 원유 수입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코로나19 위기에 국가가 기업 생존을 지원하는 핵심은 3대 경제주체가 ‘원래 하던 대로(business as usual)’ 구매력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부는 “기간산업이 무너진다”며 호들갑을 떠는 대기업들을 토닥토닥 다독이며, 위기의 원인과 경제회생의 방법론에 합의를 꾀해야 한다.

은행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힘들어지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은행 창구로 대거 몰린 대기업들을 상대로 ‘묻지 마 대출’을 해주면서 쉽게 실적을 올리는 추태를 중단해야 한다. ‘돈 만지는 일을 하니 그 높은 연봉을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일해서야 쓰겠는가.

지금처럼 한다면, 한국의 소비재(어쩌면 내구소비재까지도) 시장은 스웨덴 이케아와 일본 다이소에 완전히 빼앗길 것 같다. 질소를 잔뜩 넣고 포장재 부피가 내용물 부피보다 더 큰 한국 과자를 보면 유럽 과자 회사에 국내 과자시장을 죄다 내어줄 것 같다.

코로나19가 경제학자들에게 주는 평범한 교훈은 “돈은 역시 돌아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모든 부를 빨아들이는 잘난 사람들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이태원 클럽 31번’ 신세일 뿐이다.

바이러스는 하루에 밥을 6끼 먹을 수도 없는 자산 수조원의 재벌 1명보다 6000원 짜리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를 함께 즐길 수천만 명이 꾸려가는 경제가 더 지속가능함을 가르치고 있다.

코로나19가 부른 경제적 재앙이 무서운가? 아니면, 정부와 은행이 대기업의 만성질환을 이 지경으로 방치해 초래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불황(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pression, CVID)’이 더 무서운가?

이케아 고양점 가구 매장에 스웨덴 상어 인형이 장식돼 있다. / 사진=이상현 기자
이케아 고양점 가구 매장에 스웨덴 상어 인형이 장식돼 있다. / 사진=이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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