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政칼럼] 鄭昌泳(본지 편집국장)
Ⅰ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가시지 않는다. 한치 앞 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감과 열정으로 살던 사람들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다.
Ⅱ
지난 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전통술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이 주최한 ‘전통주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는 장태평 농수식품부장관을 비롯해 이낙연 국회 농수식품위원장 등 수십명의 의원들이 들락날락하며 이 토론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주최자만 바뀌며 해마다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전통주 행사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에서 모여든 전통주 업계 관계자들이 마치 ‘살 길’을 찾아 나서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참석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 같이 외래주에 밀려 전통주가 고사직전에 있으며 주무당국(국세청)의 지원부족으로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전통술이 내팽개쳐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토해냈다.
특히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전통술을 특별지원해 농가소득도 올리고 우리 술도 세계에 알리는 일거양득의 정책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정책토론회의 핵심은 전통주산업진흥법을 제정해 전통주 업무를 국세청에서 분리해 농수식품부가 주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니까 국세청으로 일원화 돼 있는 현 주세행정을 반죽해서 농수식품부가 일부 가져가 이원화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어려움에 처한 농촌과 농민을 살리고, 우리 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적으로 큰 결함을 갖고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전통주(농민주)에 대한 국세청 지원은 현실적으로 초법적에 가까울 정도로 무제한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행 주세법과 국세청 주세행정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주는 규제에서 완전 예외대열에 있다. 제조면허도 농수식품부를 비롯해 여러곳에서 내주라고 통보만하면 군말없이 내줘야하고, 국민보건위생과 직결되는 각종 검사도 거의 열외다. 전통주는 영세한 업계 현실을 감안해 주세행정의 기본 중의 기본인 납세병마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각종 기준도 거의 적용하지 않는다.
주세율도 파격 인하한데다 전통주 유통과 관련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 수준이다. 솔직히 일반주류 유통업체들이 벌벌 떠는 덤핑거래나 무자료거래 단속에서도 전통주는 예외다.
현재의 주세행정이 전통주에 관한한 규제보다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간단히 나온다. 이는 틈만 나면 주류행정을 이관해 가려는 이런 움직임에 ‘마찰없이’ 대응하다가 나온 기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우는 아이가 달라는 것을 울 때마다 주었는데도 근본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결과 전통주에 대한 성적표는 한마디로 참담하다. 농림부 면허추천 남발에 군말없이 모두 면허를 내주다 보니 무려 431건의 주류제조면허가 나갔고 이 중 면허가 유지되는 것은 257개(60%)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주류출고 실적이 있는 곳은 131개에 불과하고 연매출 5억원 이상업체는 29개 뿐이다. 정부 면허 치고는 완전 바닥성적표다.
푸른 꿈을 안고 국세청 주류제조 면허를 받은 농민들이 민속주 특성상 제조장치에 비용을 투자했고 대부분 망했거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Ⅲ
상황이 이런데도 농식품부가 전통주 진흥을 이처럼 간곡하게 외치는 배경에 의혹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전통주가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은 정부에서 찾지 말고 당연히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왜 소비자들이 전통주를 외면하는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금방 찾아진다. 또 우리민족 대표적인 전통주인 막걸리와 약주의 경우 국세청 관리감독 아래서도 훌륭한 산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장수막걸리와 백세주, 산사춘, 천년약속, 복분자주 등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전통주를 농수식품부는 왜 전통주로 분류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전통주진흥법이 제정될 경우, 주류행정이 이원화 될 경우 오히려 전통주가 받게 될 심각한 타격에 대해 생각이 없고, 오로지 주류관련 업무를 이관해 가려는데 혈안이 돼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내 주류산업은 국민 대중주인 소주산업을 과보호 하다가 WTO에 엄청나게 큰 수업료를 치렀던 경험이 있다. 이제 주류산업은 국내에서 우리끼리 웃고 즐길 그런 게임이 아니다. 앞 뒤 고민도 없고, 타법과 충돌될 것이 뻔한 엉성하기 짝이 없는 법안으로 전국의 농민들 가슴에 허망한 기대를 걸게 해서는 안된다. 농촌문제는 농정으로 풀어야지 주세행정으로 풀 수는 없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에 왜 이런 ‘정책 과소비’가 연중행사로 계속되는지 이제 정말 지겹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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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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