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는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약속을 깨고 그 상자를 열고 만다. 그러자 상자 안에 갇혀있던 욕심, 질투, 시기, 질병 등 온갖 악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얼른 닫자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는다. 결국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사람들은 희망만을 마냥 기다리며 살게 된다.
이 신화는 약속, 신뢰, 호기심, 고난, 희망 등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세금으로 패러디하면 큰 선물 상자일수록 뚜껑을 열면 묵직한 증여세 고지서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증여나 선물에 매기는 세금 이름은 나라 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는 Gift Tax 라 칭한다. 선물세이다. 생활형 어감이 생생하다. 반면에 우리는 증여세라고 부른다. 규모가 더 커 보이고 법률적인 어감이 묻어난다.
일반인들은 오고 가는 선물이나 현금 거래에 세금 부담이 숨어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규모가 커서 부모 자식간에 고급 자동차를 사주거나, 부동산을 명의이전하여 주고, 예쁜 딸에게 약국을 개업하여 주었다가 거액의 증여세를 내는 경우들도 비일비재하다.
그럼 부모와 자녀간에 오고 간 선물이나 금전에는 얼마까지 세금이 없을까.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규정한 바로는 장성한 자녀와 부모 사이에 오고 간 선물이나 금전을 합하여 십 년간 3천만원까지는 증여세가 없다. 한 해 3백만원꼴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바람 잘 날 없고, 갑자기 많은 치료비가 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이사 하거나, 집안 대소사가 있게 마련이어서 존비속 사이에 삼백만 원을 넘기는 건 다반사다. 가족과 집안 관계가 중시되는 유교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혼식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결혼식은 대표적인 개선대상이기도 한데 예식장 거품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호텔의 경우 불과 한 시간 남짓 혼례 값으로 억대의 비용이 든다. 게다가 신랑 집에서는 집 장만을 하여야 하고 신부 집에서는 혼수 등 예단을 준비하여야 하는데 당사자는 물론 혼주들에게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미국의 결혼식은 상대적으로 생활 밀착형인 것 같다. 교회, 깔끔한 식당 등에서 거품이 없는 혼례를 치른다. 우리와 같은 현금 봉투는 없고, 지인들에게 소소한 가정용품을 선물할 수 있도록 인근쇼핑몰이나 백화점을 지정해준다. 해당 백화점에 가면 신혼 커플의 이름이 있는 선물 기입 리스트를 보여 주는데 다른 사람이 선물하지 않은 생활용품을 기재해주고 대금을 치르면 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부모가 결혼 비용과 집 장만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조부나 부모 세대가 부동산을 폭등시키고 그 이익을 향유하였으므로 그 업보를 책임지라는 거다. 결국 독립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개는 부모가 집과 혼수를 장만하여 줄 수 밖에 없는데 그 비용이 억대가 넘게 들다 보니 증여세 비과세 3천만원 한도를 가볍게 넘기게 된다.
부조금 역시 증여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통념상의 금액 이내만이 증여세 해당이 없다고 되어 있어 사업 등 이해관계상 혼례 기회에 듬뿍 부조를 하면 증여세를 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거액의 자산 출처를 결혼식 부조금이라고 답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는데 부조금의 수증자가 혼주냐, 혼인 당사자냐로 세간의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부부 돈은 쌈짓돈이라 한다. 실제로 가정에서는 그렇게 운용된다. 보통 가정에서는 남편 돈과 부인 돈이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세법은 구분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증여세 납세의무는 상존한다.
결국 이런 저런 부분들이 개선대상이다. 생활을 불편하게 할 뿐 우리의 오랜 풍습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인 미국의 경우조차 부부간에는 무한도의 부부공제로 증여세를 사실상 내지 않는다..
실제로 외국의 경우 아예 증여세 세제가 없는 나라도 있고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많다. 미국의 경우 부나 모가 따로 따로 자녀 별로 개별적으로 일년에 천만 원 정도까지 주어도 된다.
향후 5년간 135조 이상의 추가 세원을 필요로 하는 새 정부를 위하여 벌써 금융 실명제를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차명계좌도 그대로 실명으로 인정하자는 거다. 이럴 경우 가족간의 은행 계좌들은 모두 증여세 과세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개정된 세법도 부부간에 계좌간 이체된 금원은 일단 증여 추정의 대상으로 본다.
존비속간 비과세 한도를 한 해 3백만원 정도만 허용하는 현행 세법이나 쌈짓돈에 대하여 부부간 증여추정하는 세법 규정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한 국민소득 규모와 장구한 우리 미풍양속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을 계속 존치하면 대다수 국민들을 잠재적 탈세자로 모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가정생활 속 소소한 데까지 세금이 파고드는 세법은 결코 좋은 모양새로 보이질 않는다. 행복한 사회를 지켜주는 ‘착한’ 세법을 위하여 늘 고민하는 사람이 많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