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희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 이종희 교수

1학년의 장기 결석 학생들을 상담했다. 이 학생들과 상담이 이뤄지려면 상당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 학기 초부터 띄엄띄엄 결석하기 시작한 학생들은 대개 3, 4주 차부터 눈에 띄게 결석이 잦아지다가 4월에 들어서면서 아예 안 나오기 시작한다. 심지어 중간고사도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전에는 전화할 엄두도 내지 않고, 오후 2~3시께가 돼서 전화해보면 자다가 일어난 목소리다. 상담 시간을 약속해도 번번이 오지 않는다. 부모님과 통화해 본들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얼굴 보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큰맘 먹고 학교에 나와줬을 때, 학생이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이라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학교에 성실히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학생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 손을 놓았으며, 현재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미래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 없이 무기력해져 있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단기 목표를 세워주거나, 졸업 후의 멋진 청사진을 제시하며 동기 부여를 하거나, 심지어 부모님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정성껏 기르고 보살폈는지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과 젊음을 소중히 할 것을 호소한다. 아이들의 무기력과 건들거림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혼신의 힘을 다해 이야기하다가도 오랜 시간 관성이 돼버린 그들의 패배감과 좌절감에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장기 결석자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출석을 부름과 동시에 엎드리는 학생, 끊임없는 지적에도 대놓고 휴대폰을 하는 학생, 집중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듯한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교수님들마다 수업 진행에 애로를 서로 토로한다. 얼마 전 대학신문에서 한국 대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룬 기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우리 대학에 올해 네팔 유학생들이 대거 입학했는데 우리 과를 지원한 학생이 많아 과에서 네팔 유학생들로 구성된 ‘국제반’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학기 초 네팔학생들과 함께 MT에 가서 그들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MT를 가기 전, 한국어를 아직 못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혹시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MT를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한국 신입생이 아니라 네팔 학생들이었다. 심지어 무대를 장악하고 흥겹게 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그들을 보며 한국 학생들은 기가 죽어 삼삼오오 자리를 뜨기도 했다. 그때는 ‘우리 민족도 가무(歌舞)를 꽤나 즐기는 민족인데 네팔 사람들도 흥이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만나본 그들은 단순히 흥이 많은 것이 아니라 매사에 긍정적이고 행복지수가 매우 높았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나 몸짓에도 매우 크게 반응해 박수를 치고 좋아했으며 수업 시간에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대답하고 많이 웃는다. 한국 음식이 입에 안 맞거나 기숙사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활짝 웃고, 시험 점수가 좀 나쁘다고 이야기해도 괜찮다며 활짝 웃는다. 그래서 40여 명의 네팔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나오면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져 싱글벙글 웃게 된다. 한국 학생들과 수업하고 나면 진이 빠져 연구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게 되는 것과 딴판이다.

갑자기 네팔이 어떤 나라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내가 알고 있던 가난한 네팔, 큰딸이 봉사하러 갔다가 배탈 나서 고생하던 네팔에는 아무 걱정 없다는 듯 활짝 웃는 사람이 많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내일에 대한 불안이나 포기 말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는 한국 대학생도 만나고 싶은 맘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상위 소수만이 인정받고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냉정한 한국 사회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 간절함일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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