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핀란드 땀페레대(UTA) 교육대학원 연구원

▲ 이동섭 연구원

1992년 세계 불평등이 증가할 때 영국은 폴리텍과 대학을 단일화시킨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는 중부 영국 출신의 노동자가정이나 소수인종 출신들의 고등교육 참여를 확대하고 대중화시키기 위함이었다(1988년 <교육개혁법>에 따라 영국 폴리텍은 지방정부와는 별개의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 법인화된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 이후 핀란드 고등교육은 ‘연구와 이론중심’의 일반대학(Yliopisto)과 ‘직업과 실용’을 지향하는 폴리텍(Ammattikorkeakoulu)이 함께 가는 평행한 이중구조를 취한다. 양 국가 모두 당시 급변하는 산업구조와 세계 경기침체, 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로 말미암아 국가주도의 고등교육개혁을 단행했지만 그 모양새는 달랐다.

핀란드의 후기 중등기술직업교육은 지역산업에 따라 폴리텍이라는 이름하에 고등교육으로 상향됐고, 영국의 폴리텍과 일반대는 하나의 대학으로 단일화된다. 2018 핀란드 폴리텍은 <대학법 개정>으로 ‘학문교육(academic education)’ ‘직업교육(vocational/professional education)’ ‘시민교육(civic education)’이라는 모호한 경계선상에서 대학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정체성과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2018년 현재 핀란드 전역에는 14개의 일반대(총 15만8000명의 학생)와 23개의 폴리텍(총 14만2000명의 학생), 12개의 연구기관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수는 2030년까지 점점 줄여가는 추세다(현재 고등교육은 연구개발 활동을 포함해 총 GDP 대비 1.8%를 지출하지만 2030년까지 4%로 늘린다).

2006년 개교 이래 보건사회 계열에서 강점을 보였던 라우레아 폴리텍은 ‘교육’ ‘연구개발혁신’ ‘지역발전’이란 세 과제들을 모든 교육과정 안에 포함시켜, 개발학습(LbD;Learning by Developing) 교수법을 전교생에게 적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라우레아는 폴리텍 포뮬러 재정지원방식 안에 들어 있는 3요소(2015년 지표: 교육과 훈련 85%, 연구와 개발 15%, 지역발전을 위한 특성화 특별지원금)를 최적의 방식으로 통합해 대학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왔다. ‘교육’에서는 코칭과 자기주도 학습을 활성화하고, ‘연구개발혁신’에서는 성과목표가 달성되도록 적절한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해보고, 지역사회를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역발전프로젝트'에 전교생이 100% 참여한다.

품푸(Pumppu) 프로젝트

최근 유럽개발기금에서 재정지원 받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냈던 품푸(Pumppu) 프로젝트는 라우레아 로흐야(Lohja) 캠퍼스와 핀란드 남부 4개 지역의 다양한 폴리텍끼리 시민중심 방식으로 지역복지서비스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동상생협력프로젝트’다. 참여 학생들은 서부 우시마(Uusimaa)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주민들을 위해 생애주기별 건강검진과 전 생애복지지원 서비스를 디자인했다.

모든 참가 대학 행정직원과 학생, 교수, 시민, 공공기관, 협회, 환자, 정보제공자, IT 전문가, 개발관리자에게 특정 과제마다 각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프로젝트에 ‘교육’ ‘연구개발혁신’ ‘지역발전’이라는 통합된 내용은 포함됐으나, 실제 학습단위들이 프로젝트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을 경우 학습자는 마치 저글링을 돌리듯 3영역 사이의 균형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프로젝트 전문가인 한나 투오히마(Hanna Tuohima)는 “대부분 작업은 간호학과 학생이 수행했고 비즈니스 계열 학생들도 일부 과제에 같이 참여했다. 첫해는 가끔 교육기능의 역할이 너무 커질 수도 있고, 일부 학습단위에서 교육과정의 목표가 프로젝트의 목표와 서로 양립할 수 없어 따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 큰 ‘지역발전’ 과제일수록 학생이 과제를 소화할 수 있게끔 작은 부분들로 나눠 맡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프로젝트 조정자가 전체 팀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리텍 수업은 특정학위 프로그램에 따라 이론실습이 210, 240, 270학점(ECTS)을 차지한다. 210학점일 경우 3.5년, 240학점일 경우 4년, 270학점일 경우는 4.5년이 소요된다(1학점은 27시간의 학업에 상응하고 1년간의 학습량은 60학점(ECTS)으로 1600시간의 학업에 상응함). 총 210학점으로 구성된 학위과정의 학습모듈에서 단일 학습단위의 크기는 5~15학점까지 다양하고, 졸업논문은 대개 15학점이다. 학습 방법은 실험, 워크숍, 시뮬레이션, 프로젝트 학습, 그룹작업, 온라인 학습 및 실습으로 실제 개발학습(LbD)을 이용할 때는 학습단위를 프로젝트에 유연하게 통합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 라우레아 리빙랩 (사진=라우레아 폴리텍)

리빙랩(LivingLabs)

최근 실생활 공동체 환경이 조성된 '리빙랩'에서는 라우레아의 전략과제를 통합해, 사용자 중심의 개방형 혁신생태계를 조성했다. 현재 라우레아 '리빙랩'은 상호공유 및 개발학습을 통한 혁신활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관련 연구기관, 기업, 지자체와 지역공공기관, 시민 이용자들과 ‘공동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키모 한노넨(Kimmo Hannonen) 라우레아 폴리텍 부총장은 “지역사회발전과 기업의 당면과제에 대해 대학은 새로운 해법을 내야 한다. 서로 협업해 공동의 개념과 가치를 창출하고, 이른 시일 안에 신제품을 발굴해 시험 검증해, 높은 질의 서비스로 제품화할 수 있는 ‘리빙랩’과 같은 실제 환경이 필요하다. 기업대표자는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전념하고, 공공기관은 공동체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시의회의 정치적 의제들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재원을 투자한다. 대학과 관련연구기관은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혁신기술방법을 제공해 평생교육 차원에서 지식기술을 저변에 확장시킨다. 그리고 일반시민과 소비자를 대변하는 사용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신제품과 서비스를 공동개발할 수 있도록 공동 참여,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오케스트라와 같은 화음이 '리빙랩'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핀란드 환경부가 3년 동안 지원한 도시발전 '리빙랩' 가운데 하나인 ‘배려와 공유 네트워크(Välittävät Valittavat Verkostot)’는 주민 참여를 통해 대학과 이해 관계자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프로젝트다. 에스포(Espoo)시 가운데 1만7000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은 교외 지역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 배려와 공유 네트워크(Välittävät Valittavat Verkostot). (사진=라우레아 폴리텍)

거의 100여 명의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 주민 워크숍과 커뮤니티 워크숍을 열고 ‘미래공동창조도시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도의 실험을 했다. 커뮤니티 워크숍은 헬싱키 대학 행동과학연구소 엥게스트롬(Engeström) 교수의 ‘변화 실험실(Change Laboratory)’과 ‘확장학습(expansive learning)’ 방법을 토대로 공동목표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공동체발전에 각자의 역할을 찾도록 도움을 줬다.

‘변화실험실’에서 정책가나, 실천가, 연구자,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은 새로운 활동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7~8회 집중 세션을 가진다. 세션 내용을 미리 계획하고 누적된 지식과 내용은 다음 세션을 위해 기록한다. 중재자인 연구자가 주로 주도해 ‘확장학습’을 촉진시킨다.

다음은 ‘변화실험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여준다.

▲ 변화 실험실의 절차

건축연구자인 카티아 마우누나호(Katja Maununaho)는 “사회, 문화, 환경적 요소가 지역도시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상생 협력하도록 하는지 의견 교환을 하면서 서로 다른 지자체와 일종의 시 행정부서간의 상호협력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서비스 디자인학과 비비안 스토르룬드(Vivian Storlund)는 “라우레아 구성원과 시민사회 활동가, 일반인들이 지자체와 시당국에 의견을 직접 내 도시공동체의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록세이나(Filokseina)협회의 미아 세보니우스 말레(Mia-Sevonius Male)는 “우리같이 큰 빌딩의 꼭대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웃과 조우하기 힘들어 외로움의 상흔이 있다. 이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부대껴야 한다. ‘리빙랩’에서는 서로 부대끼며 모두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대학구성원들도 무너지는 경계에 불안해하며 칸막이 쳐진 학과나 학제 안에 마냥 갇혀 있지 말고, ‘리빙랩’에서처럼 다양한 사용자 참여 방법론과 여러 도구들을 가지고 상호주제 영역별로 지식과 신기술에 대한 유동적이고 통합적인 해석을 해보고, 일상생활과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해 보며, 늘어나는 지식의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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