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내려놓고 '권리' 되찾는 성평등 교육으로 확산돼야

인권센터 유명무실화 해결해야…‘독립성’ ‘전문성’ ‘투명성’ 확보 관건
가해자 ‘정직 3개월’ 솜방망이 처벌 막고 피해자와 분리해야
성평등한 문화 확산 위해 양성평등 및 인권교육이 의무화 필수

▲ 지난 8일 '3.8 대학생 공동행동'이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대학 내 성폭력 근철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이하은·장진희 기자] 개강을 맞은 대학가에서 ‘미투(MeToo)' 운동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미투 외침이 폭로에 그치지 않고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학내 남성 중심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대학 내에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제도가 많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도록 대학 내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안과 이미 벌어진 성폭력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 ‘비공식적인 고발’로 2차 피해 막으려면…인권센터 절실 = 미투 파장이 대학가까지 미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대나무숲’ 등에서 익명 고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제기에 그칠 뿐,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상담과 보호가 필요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생들이 이런 ‘비공식적인 고발’에 의존하는 이유는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할 인권센터가 부재한 탓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전국 97개 대학 중 인권센터가 설치된 대학은 19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1차적으로 전문적인 전담기구가 부재해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비일비재한 성폭력 사건과 인권문제로 인권센터 설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노웅래 의원은 지난해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법’을 발의했다. 학교는 교직원, 학생 등 학교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인권센터를 설치·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인권센터가 있더라도 ‘피해자 보호-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실은 상담센터의 환경이 열악해 조사조차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가 조사한 ‘대학 성평등 기구설치와 운영실태 기초조사’에 따르면 전국 59개 대학 중 성평등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100명이었다. 대학당 약 2명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구성원을 대상으로 업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원의 신분도 문제다. 52명은 계약직으로 평균 근속연수는 4.6년이었다. 김경희 중앙대 인권센터장은 “질 높은 상담ㆍ조사ㆍ연구를 위해서는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하다”며 “업무 연속성, 비밀 유지, 경험 축적 등을 할 수 있도록 고용 안정성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독립성’ ‘전문성’ ‘투명성’을 강조했다. 장 교수는 “외부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또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엄중히 처벌을 해야 할뿐만 아니라 결정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구제요청을 했으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진다면 인권센터가 의무화되더라도 아무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가해자 교수 복직 못하도록 대책 마련…그런데 사립대는? = ‘미투’ 운동 확산 이후 정부가 마련한 대책 중에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도 담겼다. 정부는 지난달 성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을 즉각 퇴출하는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대학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지난달 27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립대 교직원 및 교원에 해당하는 교육공무원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저지르면, 비위 정도에 상관없이 교단을 떠나야 한다. 성희롱 교육공무원은 징계가 ‘정직이나 감봉’에서 ‘강등이나 정직’으로 강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그동안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정직 3개월’의 솜방망이 처분에 그쳤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립대에서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수 35명 중 파면 등 중징계를 받은 교수는 11명(31%)에 불과했다. 나머지 24명은 정직·견책·감봉 등의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정부의 공공부문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사립대 교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사립대 교수도 마찬가지로 정직 3개월만의 처분을 받고 복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은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다시 강단에 서 학생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돼왔다.

여성 조교를 성추행한 수도권 한 대학의 손 모 교수는 최근 총학생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1학기부터 다시 강의 중이다. 검찰의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에도 불구하고 복직했다. 손 모 교수는 지난해 3월 대학으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 대부분이 사립대임을 고려할 때, 이들을 공정하게 처벌하기 위한 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웅래 의원이 지난해 12월보다 공정한 징계를 위해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을 1명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일명 교수들이 다른 교수의 징계를 결정하는 ‘셀프 징계’를 막고자 함이다.

이밖에도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원칙에 따라 교수에 적절한 징계를 내리고도, 되레 학교 측이나 교수들이 고소를 당하는 상황을 막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폭력을 저지르고 징계를 받은 교수들이 자신의 징계가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징계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소청위원회에서도 감형되지 않으면, 학교 측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조승래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 상임의장은 “현재로서는 교수들이 학교 측을 고소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며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 교원에 대해 관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를 남용해 구제를 받겠다는 교수들이 줄어들 수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궁극적으로 성평등 교육으로 올바른 성문화 바로잡아야 = 미투를 계기로 성평등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 양성평등 및 인권교육이 의무화돼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예방책도 마련했다. 지난 1월 초중고교 페미니즘교육 의무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기자. 청와대는 올해 실태조사를 진행한 후 통합 인권교육에 포함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성평등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여성주의 등 성교육을 의무화·내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성희롱ㆍ성매매ㆍ성폭력ㆍ가정폭력 예방 및 방지를 위한 ‘2018년 폭력 예방교육 운영안내’를 발표했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여가부는 성희롱 방지조치 의무이행사항 중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부진기관으로 분류하고 △관리자특별교육 △언론공표 △예방교육 이행계획서 제출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은 물론 대학도 포함된다.

또한 예방교육 이수를 의무화한 경우 가점 5점을 부여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학칙에 반영 △성과평가나 승진인사에 반영 △신규 임용교원은 폭력예방교육 이수증 제출 △재학생의 졸업요건 충족사항으로 포함 등이다.

여가부는 “예방교육을 통해 왜곡된 성 인식 및 문화 개선과 안전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효율적이고 내실 있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 부산대 여성연구소장은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권력의 문제다.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피해자 입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전반적 인권교육 및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고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면서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다. 제도의 한계로 피해자가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 목소리 의심하는 태도도 문제다”며 “예방교육부터 법률 개정까지 전반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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