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본지 논설위원,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황금개띠의 해,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4차 산업혁명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갈 것이고 세상은 빠르게 변할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세시대부터 교양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대학은 산업화ㆍ근대화 과정에서 인력 양성과 보급의 역할을 해왔다. 범위나 파급력 면에서 그 어떤 변화보다 더 큰 격변이 예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좀 다른 관점에서 대학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20세기 최고 사회학자로 손꼽히는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석학이 있다. 흔히 그를 문화사회학자라 부른다. 경제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적인 사회과학의 흐름에서 그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관점을 내놓았다. 부르디외는 자본 개념을 현대사회에 맞게 재해석했다. 기존에는 자본이 경제적 개념일 뿐이었지만 그는 자본의 범위를 확대했다. 경제적 자본 외에 사회적 자본, 상징적 자본, 문화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경제적 자본은 재산, 소득 등을 가리키고, 사회적 자본은 연줄이나 인맥 등의 사회적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상징적 자본은 명예, 위신 등을 일컫는다.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문화적 자본이다. 문화적 자본은 다시 세 가지로 세분된다. 우선은 체화된 문화자본이다. 인간이 자본을 체화된 형태로 몸에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지식·교양·기능·취향·감성 등을 들 수 있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획득하는 것들이다. 두 번째는 객체화된 문화자본이다. 인간이 소유하거나 보유하는 물건으로 문화상품ㆍ골동품ㆍ예술품 등을 말한다. 세 번째는 졸업장이나 학위ㆍ자격증 등과 같이 공식적인 교육과정 및 제도를 통해 얻는 공인된 자격이다. 이를 부르디외는 ‘제도적 문화자본’이라 규정했다. 이렇게 그의 자본개념은 현대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으며 문화적 자본까지 포괄함으로써 광범한 자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질적ㆍ비물질적 자산은 각 개인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여기서 대학이 담당하는 역할이 적지 않다. 특히 문화적 자본의 형성과 획득에서 대학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고등교육을 통해 익히게 되는 전문지식, 기술, 세련된 교양 등은 체화된 문화자본이며, 정규 과정을 마침으로써 받게 되는 졸업장과 학위는 제도화된 문화자본이다. 대학은 개개인에게 문화적 자본을 쌓게 해주는 장소 역할을 해온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평생학습과 지속적 재사회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대학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산업화 시대처럼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 그리고 대학 졸업장이 사회진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제도화된 문화자본의 의미는 점점 퇴색할 것이고 체화된 문화자본에서 중요한 내용은 달라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진원지인 다보스 포럼은 21세기 학생들에게 필요한 스킬 16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기초소양으로는 문해력·산술능력·과학소양·ICT소양·금융소양·문화적인 시민소양 6가지를 들었고, 역량으로는 비판적 사고력 및 문제해결능력·창의력·소통능력·협업능력 4가지를 꼽았다. 성격적 특성으로는 호기심·진취성·지구력·적응력·리더십·사회문화적 의식 6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16가지를 부르디외식으로 말한다면 모두 체화된 문화자본이다. 기초소양은 주로 초중등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할 것이고 대학교육은 근본적 속성을 갖는 역량교육과 성격적 특성을 기르는 데 더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역량과 성격적 특성을 갖추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개인영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교수가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적는 방식의 고등교육은 박물관의 유물로 가야한다. 학과 장벽 없이 필요한 지식을 자유롭게 배우는 무학과 과정으로 운영하거나 에듀테크 도입으로 교과목은 재택학습으로 하고 대학에서는 토론 및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하는 등 대학교육의 파격적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특히 역량과 성격적 특성은 동료나 멘토와의 관계나 교감을 통해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대학은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산업화시대 대학교육이 실용지식 중심이었다면 21세기에는 교양과 역량중심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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