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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문학 진흥은 인문학자 지위와 규모에 달려있다

기사승인 2017.07.30  17: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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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택(본지 논설위원 / 서경대 철학과 교수)

   

새 법안들은 우리나라에서 연말에 대개 패키지 형태로 국회를 통과한다. 2015년 마지막 날에도 백여 개 법안이 제정됐고, 여기에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안’도 있었다. 제정 취지는 명확하다. 위기의 인문학을 이 법률의 시행으로 진흥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인문학 분야는 늘 위기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맞다. 대개 인문학은 직접적 효용성보다는 간접적 가치를 지닐 경우가 많으며, 직접적 효용성에 몰두한 이들이 난관에 봉착하거나 다른 관점을 모색할 때 인문학은 발언하고 방향을 주곤 한다. 이에 인문학은 창조되는 학문으로 여겨지면서 평소에는 주변에 머물곤 한다. 그래서 늘 위기였다는 지적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면 모르지만 이렇듯 짧은 글쓰기에서는 말이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일상적 위기의 인문학을 다른 학문들처럼 반듯한 학문으로, 늘 잘나가는 학문으로 승급하는 것이 법안의 본래 취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정 취지를 제대로 보려면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과 이의 현 실태를 살펴야 한다. 인문학이 법과 제도 영역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였다. 이는 인문학이 비판적 지성이라는 특성을 보이는 점에서 보면 특이한 현상이었다. 현존하는 법과 제도에 대한 비판적ㆍ근본적 성찰을 수행한다는 인문학이 이에 기대고자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그간의 신자유주의 흐름도 작용한다. 상존하는 위기에도 그나마 유지되던 인문학 생태계가 그때쯤부터 와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대학 평가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성과 제출이 요구되고 논문게재 학술지가 등급화됐다. 생산성이 아무래도 뒤처질 인문학 분야는 대학 전체나 모든 학문의 평균에 미달하곤 한다. 인문학 선생 가운데 한량으로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평가기관들이 앞장서 낮은 생산성을 실증하고 이에 부담을 가진 대학들은 구조조정에 나선다. 학생은 줄어들고 정규직 교수진은 축소된다.

이렇듯 새로운 성격의 위기 요인이 인문학에 부가된다. 과거 귀족사회에서처럼 생계에 몰두할 필요가 없는 이들이 사상과 이념을 논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대중사회, 시민사회라는 20세기 후반 들어 사상과 이념을 논하는 이들에게도 생계 터전으로서의 정규직 일자리가 필요한데 이의 연결고리가 차단되기 시작한다. 이는 이 시대의 인문학을 둘러싼 새로운 위기 요인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위기의 인문학을 대하면서 활로를 융합에서 찾고자 하며 사례로 영국 옥스퍼드대학 등의 PPE과정을 지목하곤 한다. 철학, 정치, 경제를 융합하는 과정은 의미있는 교육 모형이다. 후속세대가 사상, 권력, 돈을 함께 지켜보는 교육은 심지어 부럽다. 이는 하지만 철학, 정치, 경제를 융합하는 물적 토대가 영국이 선도한 산업혁명으로 쌓인 데 기인한다. 우리는 그런데 지난 역사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갖는다. 특히 19세기 말이 그렇다. 산업혁명과 사회변혁이 함께 추진된 유럽과 달리 산업혁명만을 분리해 도입한 19세기 말 일본에 병합된 역사가 그렇고 나아가 그 병합도 싸움이나 전쟁의 귀결이 아니라 지배자끼리 도장을 찍은 결과라 더욱 그렇다.

인문학 위기에 융합으로 대응하고자 법안이 제정되지는 않았다. 인문학을 위기에서 마침내 탈출시키려 법안이 통과된 것도 아니다. 그 법안은 1990년대부터의 새로운 위기 요인을 걷어내어 자생적 인문학을 만들고자 제정된 것이다. 몇 해 전 미국의 한 영문학자는 『최후의 교수들』에서 인문학을 둘러싼 논란을 전통논리와 산업논리의 충돌로 조명하면서 핵심은 인문학 전임교수제의 지속 여부에 있다고 밝힌다.

인문진흥법은 이 시대 특유의 위기 요인을 찾아내 시대적 문제를 극복하는 진흥책을 실행해야 한다. 후속세대 양성에 지원금을 쏟아 붓고 전국 곳곳에 인문도시사업 깃발이 펄럭이는 데 본질적 취지가 있지는 않다. 인문학 분야 일자리의 지위와 규모가 위기에 빠진 데서 진흥 방안은 마련돼야 하며, 이는 정규직 인문학자의 규모 및 역량 있는 인문학자의 충원 구조와 연관된 문제이다. 더 이상의 시혜적 진흥이 아니라 인문학자의 지위, 규모, 충원 구조를 놓고 진흥책은 마련돼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news@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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