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시간표만 보내는 후배…밥약 위해 100만원 쓰기도”

“밥약은 선배의 대물림…노골적으로 보은 바라는 것 부담”
전문가 “부담 주는 관행 고착 우려…새로운 문화 찾아야”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후배님들 왜 보은 안하세요? 저 지금 40명 ‘밥약’하고 2명 보은 들어왔어요. 선배가 지갑으로 보이나요?” - 한국외대 대나무숲

“나 같으면 ‘보은’ 한다는 그 마음이 예뻐서 밥 한 번 더 사겠어요. 애초에 돌려받을 마음으로 사준다니…….” - 서강대 대나무숲

5월은 보은의 시즌이다. 신입생들이 입학하는 3월부터 4월까지가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밥약의 시즌이 지나고 나면 반대로 후배가 선배에게 보은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밥약-보은 문화는 선·후배 간 친밀도를 높이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학기 초 어색한 선·후배 관계를 탈피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자는 의미다.

그러나 좋은 취지로 시작된 문화가 점차 형식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심적‧물적 부담으로 밥약-보은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선배는 여러 명의 후배들에게 밥을 사줘야 해서 금전적인 부담이 되는 한편, 후배는 노골적으로 보은을 바라는 선배에게 심적 부담감을 느낀다.

고려대 김상혁씨(사회학4)는 “주변에서 밥약으로 한 달에 100만원을 쓰는 경우도 봤다”면서 “밥약 때문에 과외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각 대학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밥약 때문에 가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다.

‘밥약’을 당연시하는 후배들의 태도에도 불편함을 느꼈다. 유현지씨(경제학2)씨는 후배의 문자를 받고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유씨는 “후배가 달랑 시간표만 보냈다. 자기 공강 시간에 밥약 하자는 의미인데 그런 메시지를 받으면 밥을 사주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사줄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후배들도 불만이 있다. 한국외대 이승후씨(노어1)는 선배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학기 초 밥을 사준 선배가 “얻어먹었으면 보은을 해야한다”며 노골적으로 대가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씨는 “결국 그 선배에게 보은을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하소연 했다.

서강대 박모씨는 “밥약은 대물림이다. 15학번 선배가 16학번 후배에게 사주고 16학번은 17학번에게 사주는 것”이라며 “선배가 자신의 후배에게 베푸는 행위인데 보은을 바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부담스러운 밥약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등장했다. 고려대에서는 신입생들이 모이는 학과별 오리엔테이션에서 밥약 신청 시 에티켓 등을 간단히 설명해준다. 선·후배 간 밥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예방책이다.

김상혁씨가 개설했던 고려대 ‘착한밥약’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2014년부터 약 1년간 진행했던 착한밥약 프로젝트는 선배는 후배에게 밥을 사주고, 후배는 1000원을 온라인 모금함에 기부하는 사회적 운동이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지속성에 한계가 있었고, 밥약-보은 문화를 새롭게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화가 관행으로 고착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관행이라는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에 맞춰 변화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런 현상이 수직적인 문화로 고착화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밥약이라고 하는 행위가 일종의 선배의 명령이 되는 측면도 있다”면서 “대등한 관계 맺음이 대인관계의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하고, 또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이런 문화는 선‧후배 관계의 과도기적인 단계”라며 “이제는 밥약과 보은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 문화를 젊은이들이 탐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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