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산 본지 논설위원 / 숙명여대 경영학부 부교수(프라임사업단장))

정확히 2년 전 일이다.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맑은 눈빛으로 경청하고 질문에 열심히 답했던 학생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필자가 던진 질문에 답하기 주저하거나 답을 하더라도 기껏 몇 개 단어를 읊조렸지만, 그 학생은 질문 의도에서 벗어나더라도 완전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또한 스스럼없이 궁금한 점을 질문했는데, 질문 없는 강의에 익숙했던 필자나 동료 수강생들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참신한 느낌을 줬다. 해당 과목에서 그 학생의 최종 성적은 어땠을까? 대학 강단에 선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듯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 학생에게 중간고사 결과를 설명해 주면서 어색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창의적인 인재, 융합적인 인재, 자기주도적인 인재는 최근 대학교육을 통해 길러내야 할 인재상으로 여기저기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고 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직원들은 이런 인재상이 다소 식상하다고 느끼더라도 대부분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을 스스럼없이 질문했던 그 학생도 이런 인재상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인재상에 가까운 학생들이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시기에 학점에 초연한 학생이 많지 않기에 대학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인재상에 가까운 학생들조차 성적을 위해 길들여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이유는 지향하는 인재상과 교육내용, 교육방식, 평가방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대평가가 주를 이루는 대학 성적평가제도 안에서는 정답이 있는 평가를 통해 줄을 세워 등급 비율에 따라 학생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항상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학생이든 교·강사건 이 방식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

인재상과 교육내용 그리고 교육방식이 변하더라도 기존 평가방식을 답습하는 한, 대학에서 새로운 인재상에 걸맞은 교육은 요원한 일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강의에서 학생들은 교‧강사가 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받아 적거나, 심지어 휴대전화로 녹음까지 하고 있다. 시험을 앞두고서야 나오는 질문의 대부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를 확인하는 것들뿐이다. 캡스톤디자인 교과와 PBL이나 거꾸로 학습법과 같이 새로운 인재상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실험은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성적평가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성적평가 기준이 애매하다는 이유 등으로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필자는 교‧강사에게 성적평가의 자율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내용과 방식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하면서 유독 평가와 관련해서만 상대평가를 강제할 이유가 있을까? 혹자는 이럴 경우 절대평가가 많아지고, 학생들이 학점이 후한 과목에만 몰려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며, 강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이 학점을 잘 주는 과목만 선택하거나, 교‧강사들이 교육과정을 혁신하지 않고 후한 학점만으로 강의를 이끌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이 지닌 본연의 자정능력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내외적인 위기 상황에서 그런 대학은 지속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강사들에게 새로운 인재상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내용과 교육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이러한 변화요구에 조화롭게 성적평가 자율권도 함께 부여해야 한다. 대학은 천편일률적으로 정답에 따라 줄 세우는 상대평가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식에 조화로운 평가방식을 교·강사가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요컨대 소위 4C라고 일컬어지는 창의성(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협동(collabo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능력을 키움으로써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 자기주도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교육내용과 교육방식은 물론, 성적평가제도 역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 질문이 있는 수업, 토론이 있는 수업, 자기 의견을 말하는 수업, 공동 학습이 이루어지는 수업, 생각하는 수업은 일차적으로는 교육내용과 교육방식 변화를 통해 견인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평가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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