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미래연구소 “소수에게 권한이 보장됐던 카르텔 역기능 최소화”

사시·행시생들 ‘유권자연대(준)’ 발족 “사시·행시 5급은 존치해야”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지난달 19일 행정고시 5급 폐지를 골자로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혁 방안을 밝힌 뒤 파장이 크다. 당장 행정학 전문가들은 섣부른 시도라며 정치권 주도의 인사제도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앞서 이미 폐지됐거나 폐지를 앞둔 외무고시, 사법고시 등과 맞물려 더불어민주당이 ‘사다리 걷어차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행시 폐지론을 둘러싼 논쟁과 고시제도의 현재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 한국대학신문 DB.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계없음

[한국대학신문 이재·윤솔지 기자] 행시 폐지론의 주요 내용은 5급과 7급, 9급으로 나뉜 공무원 입직제도 중 5급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와 더미래연구소는 '국민을 위한 관료 토론회'를 열고 현재 국내 관료제도는 ‘과잉 제도화’돼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개선을 강조했다.

과잉제도화는 막스 베버가 주장한 개념이다. 관료제가 지나치게 발달한 것을 말한다. △특권계급화된 공직(철밥통) △보수안정성향(폐쇄성·경직성) △형식주의·칸막이(무책임) △과잉규제와 간섭으로 인한 능력사장(무능력)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각각의 개념은 국내 공무원 사회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더미래연구소는 과잉 제도화의 특징을 다시 4개로 나눠 발생 원인을 각각 분석해 제시했다. 이 가운데 더미래연구소는 급수별 채용시험 고수와 승진과 연동된 보직이동 등이 직급에 따라 서열화돼 권한강화와 보수인상은 승진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승진이 공직 최고의 가치로 통용되는 과잉 계급 특징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5급 폐지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더미래연구소는 “모집단위 확대를 통해 소수에게 권한이 보장됐던 기존의 폐쇄적 카르텔이 가져온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고시출신이라는 소수집단의 동질성을 깨고, 업무능력만으로 입직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출발선”이라며 “조직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점차적으로 키워 고위직까지 승진할 수 있으므로 공직 입직자들의 근무동기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시 5급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관련 학계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인사제도 개혁과 함께 5급 폐지를 주장해왔다. 행시 5급을 비롯해 사법시험 등 소수의 선발인원을 정해놓고 다수가 경쟁하도록 하는 고시제도의 특성상 소수의 기득권층을 형성해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돼 왔다.

특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지원자 간 격차가 거의 없어진 것도 공무원시험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과거 5급은 대졸 우수인재의 공직사회 입직을 위한 창구로 마련됐고 7급은 광역단체와 행정부처 중견관리자 채용을 위해, 9급은 기초지자체 등 민원처리업무 담당자 채용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각각 5·7급은 대졸자, 9급은 고졸자를 대상으로 설계됐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청년취업난이 가중되고 직업안정성이 높은 공무원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지원자간 학력이나 능력의 격차는 사라진 상태다.

이 밖에도 더미래연구소는 인사제도 개선안으로 민간경력채용자 보직 차별 철폐와 부처 맞춤형 채용 도입, 부처 맞춤형 인사지원체계 강화 등을 제안했다. 또 속진임용제와 보수·승진의 분리, 국회 인사청문 대상자 확대, 수요자 중심의 성과평가요소 확립, 정책결정과정 전면공개와 책임권한 명시 등을 개선안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개선안은 여론의 환영을 받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직접 당사자인 고시생과 행정학 전공자 등은 섣부른 시도라며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식 당론은 아니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설 정도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 차원의 공식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학계도 비판적이다. 이승종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은 “행시 5급은 우수인재가 공직사회에 들어와 공직사회와 정책의 혁신을 이끄는 선도적 리더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초점이었다. 그것을 폐지하면 사회적 평등성이나 공직사회 내의 평등성은 높아질 수 있겠으나 공직사회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우수인재의 인재영입을 막아 결과적으로 발전이 둔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7급과 9급의 격차가 거의 없어진 만큼 둘을 통합하는 게 낫다. 그리고 5급 채용자들의 경직성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민간경력채용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대학이나 대학원교육을 받은 인재들의 5급 입직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5급을 폐지하기보다 입직통로를 다양하게 만들어 동질성과 폐쇄성을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행시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면서 사법시험 등 고시생들의 연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수년간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에서 활동해온 고시생들은 지난 13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를 지키고, 교육공무직법 철회, 경찰공무원 채용 비리 척결 등 현안에 수험생들의 입장을 유권자로서 관철하고자 한다”며 ‘전국수험생유권자연대(준)’를 발족했다.

이들은 “대다수의 국민은 사법시험 존치를 원하고 있다. 정치권은 수많은 고시생의 꿈을 담보로 한 정치적 흥정을 멈추고 조속히 사법시험 존치법안 통과의 가부를 결정해주길 바라는 바다. 더불어 지난 참여정부에서 출발한 제도란 이유만으로 로스쿨제도를 통해서만 법조인이 양성되어야 한다고 말한 문재인 전 대표도 사법시험이 로스쿨제도와 병행할 수 없는 논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주시길 요청한다”며 “조직의 관료적 폐쇄성, 특권,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인 인사 시스템은 선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선발 이후의 문제다. 기득권은 그대로 두고 이제 시작하는 청년들의 발목을 잡아 흔드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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