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靑 비서실장, 퇴임 후 부산대 직선총장 관련 문건 받아봐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총장직선제로 유일하게 선출된 부산대 전호환 총장이 총장으로 추천된 상태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자신의 '친박성향'을 강조하는 문건을 보내는 등 막후교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기춘 전 실장이 직접 전 총장 임명에 개입했다는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총장직선제 폐지 기조가 완강했던 것과 비추어볼때  ‘코드인사’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지난달 30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자택에서 나온 문건을 공개하면서 퇴임 후 부산대 총장 임명에 개입 의혹이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이 2015년 12월 24일 팩스로 수신한 이 문건은 상단에 ‘후보의 임명 당위성’이라고 적힌 총 8장짜리 서류다. 공개된 2번째 장은 직선제로 선출된 전호환 부산대 총장 후보자가 총장으로 임명 받아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문건 하단에는 당시 그가 몸 담고 있던 ‘부산대 조선해양플랜트 글로벌 핵심 연구센터(GCRC)’ 팩스번호가 찍혀있다.

문건은 또 △현행법상 총장직선제가 적법하다는 점 △정부가 총장간선제(구성원합의제)로 유도하고 있지만 부산대는 故 고현철 교수가 직선제 고수를 요구하며 투신한 사건으로 직선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 △직선제 투표가 잡음 없이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번째 장의 마지막 문단이다. 문건에는 “박근혜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부산시 700여명 교수 서명 지원으로 현 정부 출범에 기여(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과학기술본부 기획위원, 인재영입위원회 기획위원, 또한 박근혜 대선후보지지 단체인 포럼부산비전 정책위원 분과위원장으로 활동), 현 정부의 국정 철학과 대학정책 추진에 적극 동참하고 있음”이라고 적혀있다.

이미 10개월 전 퇴임한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친(親)정부적 정치성향을 강조하며 임명 당위성을 설명한 것이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문건 발송 사실을 인정하며 “8장 중 3~4장은 프로필을 담았고, 당위성을 설명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자택으로 발송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전호환 총장은 “자택으로 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만나지 못한 사람은 주변 소개를 받아 가능한 모든 곳에 발송했다”면서 “해당 문건의 수신자는 김기춘 전 실장이 맞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실장에게 문건을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교육부 관계자 등으로부터 (총장으로) 임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나로서는 여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직접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로비 의혹을 해명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2015년 11월 17일 직선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총장후보자로 교육부에 추천됐다. 전호환 총장은 6개월 뒤인 올해 5월에야 교육부 임용제청과 대통령 임명을 받아 취임했다.

 

▲ 2015년 9월 18일 고 고현철 부산대 교수를 추모하고 대학 자율성 회복을 주장하며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교수대회.(사진=이재익 기자)

전호환 총장의 설명을 참고한다면 이 문건만으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전호환 총장 임명에 관여했는지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실제 교육부 고위 관료나 청와대에 지시한 흔적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황상 청와대 차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짐작할 여지는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교육부는 줄곧 총장직선제 유지 대학에 배타적인 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4년에는 직선제 유지 대학에 재정지원사업 감점 및 사업비 감액 조치 등 재정적 불이익을 줬다. 교육부 고위관료는 2015년 고현철 교수 투신 사망 이후 총장 선출을 앞둔 국립대 (부)총장들을 불러 “직선제로 총장을 뽑더라도 임용제청은 어렵다”고 직접 ‘단속’을 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과 올해 초에는 국립대학 총장선출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위원장 백성기)를 통해 '간선제를 중심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부산대 직선총장 임명 후에도 교육부 관계자는 “향후 총장선출방식을 간선제(구성원참여제)로 일원화 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며 “부산대는 특수한 상황과 총장후보자가 적격하기 때문에 임명된 것 뿐이며, 국고사업에서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제한도 지속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수년간 총장직선제 폐지 정책을 편 교육부가 청와대 지시 없이 직선 총장을 임용제청 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철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국교련) 상임회장은 “현재 간선제로 선출된 총장도 임명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직선 총장을 임명한 것은 분명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코드인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교련은 최근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국립대 총장 미임용실태에 비선실세나 민간인 개입의혹을 조사해달라는 공식 요청을 접수했다. 관련 조사는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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