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존치법안 국회 논의 무산 … 與 "존치·유예" 野 "공론장 필요"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사시존치법안)이 국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당초 12월 국회에서 재논의 될 것이 유력했으나 이 역시 불투명해졌다. 지난 9월 헌법재판소가 사시 폐지를 합헌으로 판단하면서 사실상 2017년 사시 폐지가 유력한 상황에서 이제 사시존치에 대한 논의의 최종 판단은 국회로 넘어온 상태다. 이 때문에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 모임 등 고시생 단체와 로스쿨 관련 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여야 정치인들을 장외에서 압박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는 오전부터 회의를 열고 사시존치법 등 41개 법안을 논의했으나 사시존치법 합의에 실패했다. 사시존치법안을 발의한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 등 여당 법안소위 위원들은 법조인 양성제도로 사시와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양립할 수 있다며 조속한 처리를 주장했으나 박범계 1법안소위원장 등 야당 측은 보다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현재 국회에는 김학용·오신환·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사시존치법안이 계류 중이다. 앞서 24일 법안소위 안건으로 제출됐던 이 법안은 그러나 안건순서가 뒤로 밀려 논의되지 못했다. 여당은 또 사시존치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주축으로 사시존치법안 안건순서를 빌미로 24일 법안소위 자체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단 25명은 지난 22일 사법시험 존치법안을 논의할 예정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전격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사법개혁의 대원칙을 지켜 로스쿨 안착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권성동 법사위원장(새누리당)에게 요청했다. (사진= 김태우 기자)

우여곡절 끝에 28일 심사된 사시존치법안은 이미 폐지가 확정된 사시를 되살려 법조인 양성제도를 로스쿨과 양분하도록 한 법안이라 사회적 논란이 크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자 25개 전국 로스쿨 원장들이 권성동 법사위원장(새누리당)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를 항의방문 하는 등 진통이 큰 상태다.

사시는 2005년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논의에 따라 로스쿨 도입이 결정되면서 2017년 폐지가 확정됐다. 당시 상당수의 청년들이 사시 준비를 위해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고 수년간 사시공부를 하는 등 ‘고시낭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사법제도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법조인 양성제도를 미국과 일본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로스쿨제도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 2005년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법조계 등 관련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사시가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가 높은 지위로 도약할 수 있다는 반론 등이 제기되면서 법제정이 지연됐다. 로스쿨 설치와 사시 폐지 등을 담은 법안은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現 교육부)가 발의해 2년간의 격론 끝에 2007년 국회를 통과했다. 로스쿨은 준비작업 등을 거쳐 2009년 첫 개원했다.

로스쿨과 사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교육비용이다. 사시는 명목상 응시료 외에 소모자금이 없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 수년간 공부에 매진해 실제 법관으로 금의환향하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비유가 즐겨 사용된다. 사립대 기준 2015년 등록금이 2000만원에 육박하는 로스쿨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또 대학원과정으로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만 진학이 가능한 로스쿨과 달리 의무교육과정인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점도 사시존치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이다.

이와 함께 최근 드러난 로스쿨의 전방위적인 입시비리와 특권층과 사회적 부유계층에 쏠린 학생구성도 사시존치가 설득력을 갖게 하는 이유다. 실제 교육부 감사 결과 로스쿨 입시 과정에서 사회 각계 지도층의 ‘청탁’이 드러나는가 하면 로스쿨이 자체적으로 학벌에 따른 입시가산점을 줬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여론도 사시존치가 앞선다. 지난해 법무부가 전문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사시존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85.4%로 폐지를 크게 앞섰다. 법무부가 밝힌 사시존치 찬성이유로는 △누구에게나 응시기회가 부여된다는 점 △수십년간 객관적인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해왔다는 점 △로스쿨 도입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 △로스쿨 운영 성과가 불확실하다는 점 등이다. 법무부는 또 법대출신 비법조인 1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도 일반 국민 대상 설문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회 내에서도 사시존치에 대한 지지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회 관계자는 “로스쿨 도입을 이른바 친노계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 친노계와 반목했던 야권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로스쿨을 굳이 유지시켜 국민적 부담을 이어받을 필요가 있냐는 부정적인 셈법이 득세하고 있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로스쿨 폐지와 사시존치 등에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 등 법조계 야당 인사들은 지난해 직접 사시존치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시존치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로스쿨 관계자들이 ‘몽니’를 부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로스쿨이 개원해 졸업자를 배출하고 있어 사시존치 시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 사시 1차시험이 내년부터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 등 이미 사시폐지가 ‘제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사시존치 고시생모임 회원 안진섭 씨는 “내년 시행돼야 할 사시 1차시험이 폐지법안에 따라 치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해를 거르고 치를 수도 있지만 이미 폐지가 확정적으로 기울었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로스쿨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뭘까. 전국로스쿨협의회 등 로스쿨 관련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로스쿨에 대한 비판을 흠집내기라며 적극적으로 반박해왔다. 로스쿨협의회는 자체제작한 ‘사시존치 주장의 허구와 법학전문대학원의 진실’ 자료집을 통해 ‘돈스쿨’ ‘부의 대물림’ 등 각종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교육비에 대한 반론이다. 로스쿨협의회는 법무부 보도자료 등을 인용해 사시 평균 합격연령은 28세이고 평균 준비기간은 5년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평균 15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생활비와 교재비, 학원비 등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합격할 확률은 2.93%에 불과해 취약계층이 도전하기 매우 어려운 시험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로스쿨의 경우 장학금 비율을 3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어 오히려 실질적인 저소득층 지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 사회 각층에서 경험을 쌓고 입학할 수 있는 로스쿨과 달리 사시는 시험공부에 장기간이 소요돼 사회에서 다른 일을 하거나 나이 들어 사시에 도전하는 게 사실상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시 합격자 중 직장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이 같은 지적은 사시폐지 과정을 반추해보면 유의미하다. 당초 사개특위에서 사시를 폐지한 가장 큰 이유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사시에 몰두한 고시낭인 문제와 함께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전문 법조인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고교 졸업 시기부터 소질과 적성에 관계없이 대학의 법학과로 우수 학생들이 몰리는 편중현상과 이로 인한 학문의 불균형, 결과적으로 뒤따른 대학교육의 황폐화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었다.

로스쿨법 통과가 진통을 겪었던 2007년 한찬식 당시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은 정책브리핑 등을 통해 “고시학원 위주의 수험 준비로 법대 교육이 부실하게 이뤄진데다 판·검사 양성을 위한 교과과정 위주의 사법연수원 교육으로 인해 국제·환경·노동·조세·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화·국제화된 변호사를 배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로스쿨 협의회 측은 “연구결과 등에 따르면 사시가 더 이상 계층이동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분포와 교육정도가 높은 가구의 비율이 사시와 로스쿨에서 차이가 없었고, 집안에 법률가가 있는 정도도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모 중 법률 전문가가 있는 비율을 비교해보면 로스쿨은 3.6%인데 반해 사시 40기~43기는 4.7%, 34기~43기는 3%로 나타났다. 가족 중 법률 전문가가 있는 비율도 로스쿨 8.4%, 사시 40기~43기 10.7%, 사시 34기~43기 8.7%로 집계됐다. 가족 및 친척 중 버뷸 전문가가 있는 비율은 로스쿨(26.3%)보다 사시(40기~43기 29.7%, 사시 34기~43기 33%)가 더 높았다.

▲ 사시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고시생 모임) 소속 회원들은 최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양산 자택과 故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위치한 김해 봉하마을 등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사시존치에 회의적인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와 달리 현장에서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고시생 모임 소속 회원들이 사시 폐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인 자택이나 이른바 ‘친노계“ 정치인들의 자택 앞에서 농성을 벌이거나 전국 로스쿨 원장단 등이 국회를 항의방문하는 모습 등은 바람직한 사법제도 논의를 위해서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형규 로스쿨협의회장은 “현재 사시존치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미 사회각층 협의를 통해 폐기된 법안이다. 20대 국회가 됐다고 해서 6개월만에 재론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시폐지 유예나 병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법제도 개혁의 대상인 사시와 개혁안으로 도입된 로스쿨이 병치한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 있다. 로스쿨 측에서도 사회적 비판 등을 익히 알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방송통신대 로스쿨 도입이나 야간 로스쿨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법을 제정하기보다 공론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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