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8주년 기획]국내 매체 최초 여성 대학총장 좌담회 "여성리더, 자신감과 성취 지향적 모습 보여야

보육정책·탄력 근무제·회식 문화 개혁 등 여성이 실제 필요로 하는 제도적 지원 필요

김필식 동신대 총장 "과거 여성이 선택할 학과 한계, 현재도 고위직 여성 비율 낮아"
최순자 인하대 총장 "여성 구성원 보직 주저할 때 맥락 읽고 과감히 픽업해"
김숙자 배화여자대학 총장 "여성 총장이 총장모임서 발언시 경청하지 않고 묵살 당하기도"
허묘연 서울사이버대 총장 "여성성 겸비할 수 있는 장점 충분히 활용해 성공할 수 있어"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이현진·천주연 기자]우리나라 여성 대학 총장은 몇 명일까? 올해 전국 일반대학만 살펴보면 191개교 중 여성 총장이 재임 중인 대학은 10곳에 불과하다. 국립대 여성 총장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 리더를 집중 양성하는 여대는 여성 총장이 대세지만 남성 총장을 기용하는 대학도 더러 있다.

이에 본지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국내 매체 최초로 여성 총장들이 직접 여성인재 양성과 여성 리더십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에 참여한 김필식 동신대 총장과 김숙자 배화여자대학 총장, 최순자 인하대 총장, 허묘연 서울사이버대 총장은 세대와 자라온 가정환경, 지역, 전공, 대학 형태, 총장 선임방식 등 배경이 모두 다르다. 오직 여성 총장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을 갖고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좌담회에서흔히 여성 총장에게 기대되는 모습들은 한 자락 내려놨다. 대신 삶 속에서 직접 피부로 체득한 경험과 조언을 진솔하게, 또 과감하게 쏟아냈다. 좌담회는 지난 11일 서울 용산역 인근 식당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본지 이연희 기자.

사회: 과거 공부하실 때와 비교해 현재 사회 성 평등 수준이 어떻다고 보나.

▲ 김필식 동신대 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김필식 동신대 총장(이하 김필식) : 내가 대학교 61학번인데 그때에 비하면 당연히 좋아졌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학과에 한계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가부장적이던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았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지위, 젠더 의식 등 사회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성 평등 지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가사노동과 육아시간이 압도적으로 남성보다 길고, 많은 기혼 여성들이 양육을 위해 경력을 포기한다. 자녀가 자란 후 다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려 해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된다. 고위직일수록 여성 비율이 낮아진다는 점도 문제다.

김숙자 배화여자대학 총장(이하 김숙자) : 여성계와 학계의 노력으로 법률과 제도상으로는 거의 성 평등이 이뤄졌다고 본다. 그러나 법적 지위가 실제 생활에서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구현되지 못하는 점이 문제다. 실제 양성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허묘연 서울사이버대 총장 (이하 허묘연) : 성공한 여성 리더들 중 가정의 지원보다는 독신으로서 홀로 성취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할 때 한 선배가 "직장을 가지려면 아이를 낳지 말고, 공부 하려면 결혼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을 했는데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왜 여자들이 일 하느라, 공부 하느라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고 있겠는가? 제도적으로 많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사회: 대학 내 여성들의 역량은 제대로 평가 받고 있나.

김필식: 우리 대학 여성 교수 비율은 전체 전임교원 280명 중 85명으로 30%에 육박한다. 5명의 중앙보직 처장 중 요직인 기획협력처장과 입학처장 2명이 여성이고, 학장 6명 중 1명이 여성이다. 이들이 아주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덕에 올해 큰 국고사업을 수주했다. 실제 사업 수행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직원들 역시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면 그만두는 분위기가 있었다. 2002년 대학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런 관행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결혼과 관계없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대신, 불이익도 특혜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직원들도 다양한 부서에서 중요한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사회 곳곳에서 여성 리더들이 성장할 것이다.

최순자 인하대 총장 (이하 최순자): 인하대의 경우 여교수가 18.2% 정도인데, 그 역량을 제대로 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처장이 1명, 학장이 2명 있고, 내년에는 학장 1명을 여성으로 선발하려 한다. 기획팀장, 학사팀장, 교원인사팀장 등 핵심 여성 직원도 있다. 특히 여성인 내가 총장이 되면서 여성인력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격려하며, 그들에게 내재된 역량을 밖으로 표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보직을 여성 교수에게 부여하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사양하는 것을 보면 아쉽기도 하고 성 평등 실현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허묘연: 동의한다.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양육을 이유로 부여되는 일을 피하기 보다는, 가정의 일을 다른 방법으로 보완하도록 지원한다면 성차별과 편견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사회: 총장으로 서기까지, 또 대학 운영 초반에 고충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김필식: 1965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결혼하면 개인의 커리어를 쌓기 보다는 육아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또한 결혼 후 20년 가까이 살림에 전념하고 살았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집안에서는 교대를 가라고 했지만, 나는 좀 더 스펙터클한 인생을 꿈꾸면서 서울대에 갔다. 그러던 내가 20년 동안 내조하고 아이들 키우는 데 전념하며 살았다는 것 자체가 고충이라면 고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고, 광주 집에서 서울을 오가며 학위를 받아 전문대학 교수로 20여 년간 강단에 섰다. 그때부터외부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야 하고 의식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의 권유로 여성단체협의회장을 맡아 광주지역 여성들을 위한 사업들을 해나갔다.

 

▲ 김숙자 배화여대 총장

김숙자: 과거에는 여성들의 능력이 아주 탁월해야지, 남성과 동등하거나 조금 낫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탈락하기 십상이었다. 우리 시대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내 경우 여성법학자, 여성법조인이 극히 드물던 시대에 법학을 공부해 고충 보다는 소위 희소가치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총장 취임 후 외부의 가부장적 분위기보다는, 총장회의에서 올바른 의견을 내도 여성 총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청하지 않고 묵살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듯하다.

허묘연: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부께서 고모들을 데리고 식사할 정도로 여성들이 존중 받고 똑같은 기회를 받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남편의 가족, 즉 시가가 다소 가부장적인 분위기였고, 가정 내에서 양육부터 누구의 커리어가 먼저냐 하는 것까지 부딪쳤다. 10년이 지나니 남편도 이제 이해한다. 또 친정 부모님께서도 아이 양육을 도와주는 등 가족들의 희생이 일정 부분 있었다. 그런 부분이 있어야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순자: 교수 시절 '아웃사이더'였고 재단과의 갈등도 있었던 배경 때문에 총장이 됐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나를 지지하는 이들은 재단이 제대로 봤다고 기뻐했다. 교수 시절 부딪치던 전 총장님은 내가 공대학장이 됐을 때 누구보다 먼저 전화해서 축하해주고, 총장이 됐을 때도 잘 할 거라 믿는다고 격려해줬다. 취임 후 대학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프라임 사업을 추진하다 떨어진 적이 있다. 처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많은 반발에 부딪쳤지만 내 한 몸 던져가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최순자 총장이 사심 손톱만큼 없이 학교를 위해 일한다'는 것 하나는 인정해주는 것 같더라. 개혁 과정이니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는 교수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학교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많은 이가 알아봐준다고 생각하니 걱정하지는 않는다.

사회: 반대로 경험상 여성 총장이라 가능한 강점이 있다면.

김필식: 나는 우리학교 구성원들 보면 다 자녀 같다. 교수도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생들 대부분이 날 알아봐 내가 모르고 지나가면 '총장님' 하고 부른다. 자기들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아끼는 것을 직접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교수들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총장이 옷을 사줬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나. 일을 시키려 옷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고운 마음씨가 내 눈에 보이니까 주는 거다. 이번에 프라임 사업에 선정됐는데, 아침 보고를 위해 들어온 사업단장을 내가 업고 총장실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우리 총장실은 아이들과 학부형들이 마음을 담아 쓴 편지들이 가득한 잡화상이 다 됐고, 심지어 학생들이 편하게 들락거리기도 한다. 남자 총장들은 그리 못하지 않나.

허묘연: 사이버대는 성인을 위한 평생학습 중심대학인 만큼 성별을 막론하고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경력단절이 일어나기 전 다른 진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도움을 주는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는 여성의 강점을 살릴 만한 다양한 학과가 있어 여성 교직원도 많고 여성 리더도 쉽게 수용하는 분위기다.

최순자: 정년이 1년 반 남은 여성 교수에게 보직을 맡기려 했는데 최종적으로 남편이 은퇴 후 시간을 같이 보내길 원한다면서 고사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인사위원회와 재단 결정이 내려진 뒤 '정년 전에 보직을 맡아보라'고 밀어붙였더니 수락하더라. 지금은 해당 기관을 능숙하게 이끌고 있다. 여성 구성원이 용기가 없어할 때 리더가 맥락을 읽고 픽업 하는 거다.

사회: 여성 리더와 롤모델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준 것 같다.

 

▲ 최순자 인하대 총장

최순자: 맞다. 우리 학교에 여학생 비율이 38%인데 이에 반해 여성 교수는 18%에 불과하다. 25~30%로 늘려 여성이 다양한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며 롤모델로 삼을 수 있지 않겠나. 더 많은 여성을 끌어올려줘야 한다는 게 나의 의지이며 그렇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허묘연: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계속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자연스럽게 '여자도 사회에서 역할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여성으로서 자신감 있는 모습, 성취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순자: 언론에서도 그러한 여성 롤모델들을 꾸준히 수면 위로 올려줘야 한다. 수면 밑에서 훌륭한 일을 하는 여성이 많지 않나.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는 ‘테이블에 앉으라(Sit at the table)’고 말했다. 많은 여성이 일을 다 해내고도 당당히 얘기하지 않고 '누가 도와줬다'면서 귀퉁이에 앉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러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해냈다'고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테이블 가운데 앉아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굉장히 필요한 자세다. 경험상 여성이 당당하게 말하고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남성도 있을 수 있다. 혹시 적이 생길까 두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그런 한계를 깨뜨리고 나갈 시기다.

사회: 성 평등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허묘연: 여러 보육 관련 정책과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진출시 가정과 아이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보완해주는 정책이 사회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다섯째 아이를 낳으면 돈과 집을 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남성적 시각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자책과, 결국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해 경력이 단절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 보육정책이 꼭 필요하며, 고용기관에서는 탄력 근무제를 도입하고 회식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퇴근해 집안일과 양육을 같이 하게 되면 가정에서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여성 리더가 나오지 않을까.

김숙자: 그렇다. 내가 젊은 시절에 고민하며 주장하던 일·가정 양립 논의는 여전히 내 딸들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여성문제 중에서도 ‘여성 경제활동과 출산 및 육아정책’ 은 분리돼 논할 수 없는 문제이고 함께 풀어야 할 실타래다. 인구절벽시대를 앞두고 근본적이고 파격적인 국가정책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인구정책을 위한 파격적 처방은 동시에 일·가정 양립 문제 등 ‘여성 경제활동과 출산 및 육아정책’의 근본적 해결책이 된다. 과거 프랑스의 예를 상기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사회: 여성의 야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남성의 출세욕은 당연한 것처럼 그려지는 데 반해 여성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필식: 무언가를 머릿속에 담아놓으면 그 모습대로 되는 경험들이 있다. 한 예로 나는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더 열심히 논다고 말하곤 한다. 놀기 위해, 나이 든 뒤에는 많이 베풀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한다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일동 공감 표시) 건강 관리도 마찬가지다. 나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늘 운동하고 날마다 예쁘게 꾸민다. 결국 나의 책임이라고 인식하고 내가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것이다.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 얘기다.

허묘연: 미디어에서는 여성의 야망이 왜곡되게 그려진다. '독하다'고. 나는 한 번도 대학 총장이 되겠다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로 잘 해내겠다'고 역할에 충실했더니 스스로도 만족스럽고 주변에서도 더 필요로 한 것 같다. 그래서 김필식 총장 얘기에 동의한다. 특히 주말에 열심히 놀기 위해 주중에 일한다는 것에 100% 공감한다. 보통 여성 대학총장에 대해 엄청 경쟁적이거나 성취 지향적일 것이라고, 일 밖에 모를 거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의외의 공통점을 찾아 너무 놀랐다.

최순자: 김필식 총장 얘기에 백번 동감한다. 난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실력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야망이라고 한다면 공대학장을 하고 싶었다. 인하공대 마지막 학번 700명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기 때문에 내 사진이 역대 공대 학장 사진 옆에 걸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총장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지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되도록 즐기려 한다. 구성원들과 부딪쳐도 내가 해야 할 일, 나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거라고 의미를 둔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공존하는 게 삶이고 그게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가정과의 양립 문제로 고민하거나 편견을 극복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여성 인재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김필식: 지자체 관련 활동을 할 당시 지자체 장들에게 '여성이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여성들 승진시켜야 한다'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격요건에 맞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해당 지자체 직원들에 대학원 진학을 권했고 이후 국장급으로 승진했다.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고 이를 비판할 수 있지만 자신도 부단히 준비해 자격 요건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또 일·가정 양립에 대해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위를 설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다행히 육아를 부부 공동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신세대 남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세를 몰아 사회적 공감대와 의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안이나 제도 개선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길 바란다.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돕겠다.

최순자: 공감한다. 대학 내에서 연구 많이 하는 'Three Choi' 중 하나가 나였기 때문에 교수협의회 부회장 시절 송사로 당시 총장님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음에도 교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총장께서는 이후 2000년도에 경영대학원에 가려고 지원했을 때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줬는데, 당시 경험으로 지금 이렇게 대학을 경영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
우리 사회를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에 여성의 시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고 여성의 터치가 필요하다. 여성에게는 지금이 블루오션이다. 스스로 부단히 실력을 닦아야 하는 이유다. 사회는 여성이기 때문에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개체로 능력이 있어야 기회를 준다.

김숙자: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양성평등은 남성과 동일한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동일하게 부담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 둘째, 유리천장도 뚫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스스로부터 성 평등 의식을 가져야 한다.

▲ 허묘연 서울사이버대 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허묘연: 여성 리더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겸비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좋은 부분도 있다. 여성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자 리더를 따라가려 하기 보다는 여성으로서 강점들도 함께 활용하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늘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성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에 숨지 말라는 뜻인가.

최순자: 여성들이 의지를 보여야 사회도 바뀔 것이다. 일례로 전임교원 임용 면접 당시 대학이 있는 인천으로 이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한 여성은 대답이 정확하지 않았던 반면 다른 여성은 확실히 오겠다고 답변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공부할 때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양보하느라 박사과정 기간이 8년이나 걸렸기 때문에 이제는 남편이 자신을 도와줄 때라고 답변하더라. 그걸 보고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우선시하고 직업을 후자로 두는 한 여성 리더들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사회: 이번엔 남학생과 구성원들에게 성 평등과 관련해 들려줄 부분이 있다면.

김필식: 성 평등을 위해 남성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UN의 '히포시(He for She)' 캠페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여성 혼자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맞서면서 혹은 가정과 사회의 짐을 한 몸에 감당하면서 리더로 성장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례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흔히 ‘여권 신장’ 하면 남성 권위를 실추시키거나 남성에 대해 공격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두 개가 상충되는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주위 남성을 설득하고 위축된 주위 여성들에게 손 내미는 것, 함께 성장하는 것이야 말로 여성 리더십의 장점이자 여권 신장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생들에게도 직접 대학생활 특강을 할 때에도 양성을 똑같이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강조하며 또 많이 데이트 해보라고 권한다. 먼 훗날 언제 어디서 도움을 받을지 모른다는 경험도 말해준다. 양성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허묘연: 가부장적 의식구조가 많이 변화한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남성이 특히 많이 안 변했다고 느껴진다. 고정적인 남성의 역할, 또 남성이 성취 면에서 여성보다 우선이어야 한다는 의식, 육아는 분담하려 하지 않는 의식들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진정 남녀가 평등한 사회, 여성에게도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게 아닐까.

최순자: 그래도 젊은 남성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전 세계를 비교해보면 여성 참정권 투쟁을 벌인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해방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여성에게 바로 참정권이 주어졌다. 아직 젠더 격차 지수(GGI; Gender Gap Index)가 낮지만 그래도 워낙 산업이나 경제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보니 굉장히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자신과 관계없는 여성과 주변 여성을 달리 보는 남성들의 시각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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