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제이콥스 WAAS CEO "대학 지금 바뀌어야 한다"

위기 진단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 위한 대안 모색
"미래 문명을 위한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심

▲ 경희대 피스 바 페스티벌 2016 행사 모습.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소연 기자] 더 나은 미래는 어떻게 가능한가. 경희대는 로마클럽, 부다페스트클럽,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와 함께 21일부터 오는 23일까지 동대문구 서울캠퍼스에서 유엔 제정 세계평화의 날 35주년을 기념해 '피스 바 페스티벌(PBF) 2016'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구문명의 미래: 실존 혁명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열렸다. 로마클럽, 부다페스트클럽,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등 세계적인 싱크탱크 소속 학자들과 국내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지성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진행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단기 과제에 함몰된 현실 정치, 성장과 팽창으로 환원된 정치를 넘어서 우리 모두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아내는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이틀간 열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세계 지성의 열린 대화'가 기념비적인 성찰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해외에서 어빈 라슬로 부다페스트클럽 회장과 로베르토 페체이 로마클럽 부회장, 아이토르 후르훌리노 드 수자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 회장, 알베르토 주코니 세계대학컨소시엄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국내에서는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박영신 연세대 명예교수,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등이 자리했다.

인류 문명의 위기 진단과 해법은?= 해외 석학들은 현대 사회가 지금까지 누려온 성장과 팽창 뒤엔 인류를 위협하는 난제들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들은 환경 파괴와 자원고갈, 심화하는 인간소외와 양극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테러와 폭력 등으로 인해 인류문명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빈 라슬로 부다페스트클럽 회장은 미래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연설했다. 그는 “과거의 지혜와 지식에 더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과거와 현대 기술을 접목시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에서 지속가능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지, 세상이 어떠하고, 우리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새로운 사회질서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에 미래를 위한 대안을 찾는 데 집중했다. 특히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타자와 함께 우리 삶을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해답을 제시했다.

로베르토 페체이 로마클럽 부회장은 “세계 인구가 지난 40년간 2배 증가했고 기후변화, 종의 거대한 멸종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전 과제들이 대두되고 있다”면서 “인류는 반드시 미래 후손을 위해 지구를 보존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고, 무한정 경제성장을 피하고 인간성을 고려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인류 문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아이토르 후를훌리노 드 수자 WAAS 회장은 “세계 여러 곳에서 테러와 폭력을 겪고 있다. 기술을 활용한 폭탄들이 잘못된 장소에서 터지고 있다. 해법은 있으나 쉽진 않다. 우리가 사는 복잡한 세상에서 여러 실험이 필요하다”면서 “경희대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가 평화의 날 제정을 제안했던 것처럼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 힘을 합쳐 평화를 통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9월 21일)'은 1981년 경희대 설립자 미원 조영식 박사가 세계대학총장회(IAUP)와 코스타리카 정부를 통해 유엔에 제안했다. 그해 11월 36차 유엔 총회에서 157개 회원국 전윈 일치 찬성으로 제정된 바 있다.

■ 대학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 이날 모인 학자들은 세계가 직면한 여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등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념식 이후 이어진 원탁회의에서 어빈 라슬로 부다페스트클럽 회장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세상을 단일 사건으로 바라볼 수 없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전체 사안을 봐야한다”면서 “세상은 특히 흑과 백,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인간성 인정해야 한다. 공동된 가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관과 직감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출신인 드 수자 WAAS 회장은 “우리나라 예를 들면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지냈는데, 식민지 지배자들은 고등학교만 세우지 대학은 안 세웠다. 나라가 독립한 후에야 대학이 생겼다”고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학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제기됐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현재는 시민 교육 등 사회가 대학에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이 대학의 소명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 이후 여러 사회 문제를 포함해 기후변화, 양극화 등 환경 문제 등을 놓고 대학이 현장에 어떻게 일조하느냐, 학술기관으로서 대학이 어떤 기여하는지 중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학생의 개인 성취가 공적인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학문적 토양을 일궈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지금 시대가 대학에 요청하는 사명”이라고 진단했다.

드 수자 회장도 역시 “오늘날 세계 대학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모여든다. 대학이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두면 안 된다”면서 “미국 명문 대학인 존스 홉킨스대는 2년 전 쯤 대학이 도시의 문제를 다루겠다고 선포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학이 도시의 문제점을 다룬 적이 없었으나 수준 높은 연구를 통해 도시가 겪는 문제를 대학이 해결하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실용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경희대는 이번 행사가 인류가 처한 문명사적 위기를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의식혁명·정치의 전환·시민사회 활성화 등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세계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 게리 제이콥스 WAAS CEO “변화에 저항하는 대학들, 바뀌어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 WAAS(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 CEO를 역임하고 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WAAS는 1960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된 비영리 국제학술기구다. 다양한 나라의 학자들이 과학과 인간의 복리를 고민하기 위해 설립됐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핵무기를 만든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여러 학자들이 국제적인 학술기구를 결성하게 됐다. WAAS의 창립정신은 아인슈타인이 ‘우리 의식의 창조물은 인류에게 저주가 아닌 축복이 돼야 한다’는 어록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이런 창립정신에 근거해 고등교육을 통해 문명 전환의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세계대학심포지엄 CEO로서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교육은 과거 세대에서 미래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증명한다. 사실 지금까지 교육이 담당해온 대학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공부하기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지금보다 5배 이상의 고등교육 기회를 줘야 한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9500만명의 학생들이 고등교육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추정할 정도다.”

- 현재 세계 대학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오늘날 대학은 과거 학문 이론을 기반으로 여전히 같은 모델, 같은 기술을 사용해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기술,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교육은 그대로다. 대학에서 교수가 아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데, 교수들이 아는 것도 그 이전 세대에서 배운 것을 전달하게 된다. 내가 50년 전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나도 80년 전에 배운 사람에게서 배운 지식이다. 심지어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아직도 배우고 있는데, 이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인 1776년에 나왔다. 우리 생각이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지금까지 교육 전달자 중심의 교육을 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국제대학컨퍼런스가 열렸다. 지난 50년간 대학은 전문화된 지식을 전달했으나, 학생들이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만 있었다.”

-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 ‘학생들이 뭘 배워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도 동일하다. 학생들은 더 많은 정보, 이론, 인식을 배우라고 압박을 받고 있다. 점점 더 전문가가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제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 대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대학도 가르치는 것에서 배우는 것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대학의 목적은 학생들이 본인들의 삶에서 계속해서 배우도록 하는데 있다. 50년 전 이라면 학생들이 배우는 것으로 본인들의 직업에서 능력을 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식은 어차피 구식이 된다.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 또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과거에는 개별 과목과 해당 주제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했다면 이제는 학생에 집중할 때다. 학생들이 인격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인성, 공동체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 대화하는 능력, 타인 과 함께 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교육으로 가야한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조직도 바꿔야 한다. 학생들이 배울 지식의 구조도 바꿔야한다. WAAS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50명 사회과학자들로 이뤄져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정치, 법, 경제, 사회, 문화, 기술, 심리 등 모든 관점을 통해 바라볼 수 있도록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강의실의 변화를 설명한다면.
“교육적 경험을 어떻게 재정립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연구는 많이 됐다. 세계 어떤 학생이라도 어떤 주제를 공부하고 싶으면, 어디서든 영감을 줄 수 있는 강의를 듣는 상상을 해보라. 이는 오직 인터넷에서만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의실에서 교수, 학생 등을 직접 만나는 접촉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TV나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 강의를 듣고, 강의실에 나와 학생들과 배운 지식을 토론하고 소통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더 배울 수 있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질 높은 고등교육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접근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 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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