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걸 공주대 교수회장(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공동회장)

국립대의 총장직선제는 군부독재를 종식한 1980년대 민주화의 완결을 위해 도입됐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일부 국립대 총장과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발호하며 국립대가 독재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 이런 병폐가 생기지 않도록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킴으로써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기 위해 국립대에 총장직선제가 도입된 것이다. 즉, 자유로운 양심에 뿌리를 둔 학문의 주체인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을 육성하면서 국민 위에 지배하려는 독선적 정권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민주화의 실재와 상징이 국립대 총장직선제인 것이다.

총장직선제 도입의 결과 독선적인 행정에 대한 비판의 국립대 문화가 형성되었고, 아마도 이런 비판 문화의 근간인 총장직선제가 독선의 행정 관료에게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정 편의를 위해 타도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되면서 교육부는 국민 세금의 재정지원을 무기로 삼아 총장직선제 폐기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많은 국립대가 굴욕적으로 폐기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강요에 굴복하여 도입된 형식적 간선제, 즉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하는 소수의 추천위원회에서 선출하는 로또식 총장임용후보자 선정방식으로 추천한 임용후보자조차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교육부가 임용제청을 거부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한국체육대학의 경우 4차례나 사유 없이 제청을 거부한 후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을 총장으로 임용함으로써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주대의 경우 제청거부 무효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사유 미고지 제청거부가 행정절차법에 위배돼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교육부의 상고로 거의 2년 가까이 총장이 없는 상황이다. 경북대와 한국방송대도 제청거부 소송과 불복으로 1년 이상 총장 공백의 행정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총장직선제 등과 관련 강원대 등 여러 국립대가 총장이 없는 상황이다. 총장이 없는 대학은 콘트롤 타워가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순 행정처리만 함으로써 발전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적으로 국민에게 매우 큰 손실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교원합의에 따른 방식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교육공무원법을 교육부가 재정지원이라는 수퍼갑질 수단을 동원해 한낱 행정지침으로 법 위에서 군림하는 행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런 갑질의 뒤편에는 속칭 교피아의 국립대 총장 진출의 꿈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그래서 교육부는 단순 임명제에 가까운 형식적 간선제를 무작정 강요하는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이전 국립대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해 국립대의 제 기능을 잘 수행했다. 선거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폐해나 단점은 자정작용과 선거부정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보완한 상태였다. 예를 들어 대다수 국립대가 총장선거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면서 다른 선출직 공직자와 같은 법적 관리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직선제를 폐기하며 민의가 반영될 수 없는 간선제를 강요하는 교육부나 자문위원회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오히려 교육부와 자문위의 강요된 간선제는 총장임용을 정치판이 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졸속으로 급조된 자문위원회는 구성 자체도 문제이지만, 단 두 달만에 비밀스럽게 교육부의 강요와 대동소이한 안을 발표하고 1주일만에 교육부가 확정, 강제하고 있다. 여건이 각기 다른 국립대 모두에게 획일적인 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폐쇄된 독재국가에서나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심히 우려가 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