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실현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

"대학에 대한 신뢰회복과 국민적 합의가 선결 과제"
"여건 비슷한 일본의 경상비 보조금·수배자 지정기부금 제도 참고할 필요"

▲ 전문가 패널들이 12일 용산역 회의실에서 열린 고등교육 재정 독립 방안 모색 좌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백정하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 황보은 전문대교협 사무총장,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기획조정실장, 최은옥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 반상진 전북대 교수.(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연희·김소연 기자]본지는 2016년 신년을 맞아 현재 대학들이 겪고 있는 재정 압박과 자율성 침해를 타개할 방안을 찾기 위해 '고등교육 독립기금 조성하자'를 주제로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고등교육 재정 독립의 필요성과 기금 조성시 운영주체와 운용방식을 살펴본 데 이어 마지막 순서로 고등교육 전문가들이 직접 현재 지원방식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으로 독립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과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지난 12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연성주 본지 편집국장이 사회를 맡고, 패널로는 최은옥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 황보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기획조정실장,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가 참석했다.

▲ 연성주 본지 편집국장(사진=한명섭 기자)

연성주 본지 편집국장(사회) =  대학 등록금이 몇 년째 동결된데 반해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는 것과 달리 대학들의 재정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매달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업 조건에 따라 대학 자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안으로 고등교육 정책과 재정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어  좌담회를 통해 그 실현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고등교육에 안정적인 재원을 줄 수 있는 ‘고등교육 독립기금’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황보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사회가 교육기관에 투자하지 않으면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교육 투자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고, 안정적인 재정확보방안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고등교육 교부금이나 기금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재정지원방식은 학생에 대한 지원, 기관에 대한 지원 등으로 나뉜다. 국가장학금처럼 학생 개인에게 지원하는 금액은 이명박정부 이후 큰 폭으로 늘어난 게 사실이다. 국가장학금 예산만 봐도 2008년 3812억 원에서 2016년 3조9446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기관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 국고지원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액수가 여전히 부족하다. 국가경제규모가 세계 14위권인데 반해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23위권에 그치고 있다. 2016년도 고등교육 예산이 9조2322억원으로 많은 것 같아 보이지만 지난해 하버드대 1년 예산이 45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조원이다. 우리는 1년 예산 9조원을 가지고 2년제, 4년제를 다 지원하고 있으니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가장학금으로 3조9500억원, 국립대 운영지원금  2조3400억원 빼고는 2조9000억원 밖에 남지 않는다.
19대 국회에서 야당의 1호 법안이 고등교육 재정교부금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OECD 평균치가 되는 구조다. 법안이 통과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되니까 차선책으로 보조장치인 고등교육 독립기금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현재 대학에 대한 모든 재정지원 권한은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다. 교육부도 노력하지만 기재부가 '절대 갑' 아닌가. 그래서 법적 장치를 이용해 OECD 평균인 고등교육 예산 GDP 1.2%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등교육 독립기금 법안을 만드는 것에 찬성한다. 문제는 고등교육 교부금법도 동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절대액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 책무라고 본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 교부금법을 도입하면 안정적으로 재원이 확보될 것이다. 그러나 기재부 쪽에서는 칸막이가 생기게 되고, 써야 할 데 못 쓴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반 교수가 말한 것처럼 기본적인 파이는 커졌지만 충분치 않다. 미국이나 중국의 고등교육 발전 추세를 언급하면서 고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그 나라가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고등교육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투자가 더 필요하다. 투자가 안 되고서 어떻게 질적인 발전이 가능하겠나. 등록금은 동결돼 있고, 정부 지원 규모도 작은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안정적인 재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교부금법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지금처럼 매년 사업비 예산을 증액해서, 기존 사업을 마무리 짓고 다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고등교육 재정을 조금씩 키워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기본적인 재정을 확보하고 그 외에 추가적인 지원이 진행되는 게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대학들은 장기적인 발전계획이 아니라 단기 사업의 돈을 따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 '고등교육 1조원 투자' 슬로건처럼 획기적인 예산배분 방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은옥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 재정투자가 늘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늘릴지 각론에선 입장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고등교육 예산을 GDP 1%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2016년 예산 기준으로는 GDP 0.97%로 목표에 근접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재원 자체가 학생등록금 지원이 4조원에 달해서 대학들이 어렵다는 이야기 나오는 것이다. 대학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공감하지만 하버드대의 경우 5조원 정도 예산에서 등록금이 19%, 자체기부금·적립금 운용이 30%를 넘는다. 우리나라 대학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현재 우리는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도가 57%로 상당히 높다.  2015 OECD 교육지표 보고서(Education at a glance)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립대 등록금 순위가 세계 2위다. 미국에 이어 등록금 수준이 높아 등록금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지원도 한계가 있어 별도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다.

▲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기획조정실장(사진=한명섭 기자)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기획조정실장= 이제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시대가 구분돼야 한다고 본다. 질적 성장은 최소 5년 이상 투자를 해야 성과가 나온다. 결국 어떤 재정지원 모델을 가져가야 하느냐의 문제다. 하버드대처럼 40조원의 기금을 가진 곳도 있고, 일본처럼 경상비 보조금 제도가 있어 학교와 학생에게 지원하기도 한다. 우리는 ‘투 트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각 대학에서 스스로 학생 등록금 수입을 제외한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고등교육기금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적립금을 많이 보유한 대학이라고 해도 1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사실 대학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낮아지다 보니 기금 조성에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그러나 대학 등록금 회계와 비등록금 회계를 엄격히 분리하고 비등록금을 늘린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산운용 전문성도 확보돼야 한다. 교육재정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데, 대학과 정부의 의지는 물론 기금 등 전문성 확보 노력이 단계별로 진행돼야 한다.

사회= 초·중·고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처럼 별도로 세금을 걷어 고등교육 교부금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해결책인가.

최은옥= 교부금이라고 하면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자치를 위해 쓰이고, 법정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재정이다. 고등교육에 '교부금'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부금은 배분 방식도 있지만 개별 학교도 자율적으로 지출하도록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다. 초중고는 지방교육 자치를 하는데 고등교육은 자치가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상진= 더불어민주당에서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했던 고등교육 교부금법의 핵심철학은 파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법안을 살펴보면 교부금을 공식화해서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대학의 경쟁을 유발해 배분하는 보조금(grant) 개념이다.

최은옥= 그렇다면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반상진= 의미 있는 지적이다. '고등교육 지원법' 등으로 명칭을 개정할 수 있겠다. 일반 교부금처럼 정해진 공식에 따라 딱딱 나눠주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 예산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백정하= 대교협에서도 고등교육 지원법 형식으로 이름을 바꿔서 방안을 마련해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기재부는 고정적으로 일정 비율을 고등교육에 투자할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이다. 이름보다는 내용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 기금이 조성된다면 우리나라 교육계 재정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출연하고 운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황보은= 정부가 일정 비율을 정해서 안정적으로 출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당장 많이 내놓기는 어려우니 대학 자체적으로도 기부금을 기금으로 돌려서 받는 형식이라든지 방식을 강구할 수 있다. 정부 노력도 중요하지만 대학에서도 일정 부분 노력을 해서 기금 마련을 위한 재원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

사회= 기업이 고등교육 수혜자로서 사회적 책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해야 써먹을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대학에서 기본을 닦고 사회로 나간 인재들을 통해 기업 이윤을 창출하지 않나.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800조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든지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기금 조성에 노력하도록 하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백정하= 사립대학에 왜 지원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조성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고등교육이 엘리트교육이었으나 지금은 보편교육이 됐다. 고등교육을 받아야만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생활할 기반을 갖게 된다. 기업들도 매번 대학이 인재를 못 키운다고 탓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교육시키는 것은 본연의 역할이다. 모든 문제점을 대학 책임으로, 또 다른 부처의 인력양성 문제를 모두 교육부가 잘못한 것처럼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직접 기업체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면 계약학과를 통해 키우면 된다. 모든 대학이 기업 요구에 따라 학원화 될 수는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체의 의식변화도 필요하고, 물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도 필요하니 모두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 기금을 출연한다면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최은옥 교육부 학술장학지원관(사진=한명섭 기자)

최은옥=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우리에게 없는 제도 두 가지를 운영하는 일본 사례를 참고해볼 수 있다. 하나는 사립대에 경상비를 일부 지원하는 ‘경상비 보조금’으로, 2013년 기준 연 3조원 규모다. 또 하나는 대학 기부금 창구가 되는 ‘수배자 지정 기부금’이 있다. 총 6조원 규모로 개인이나 법인이 특정 대학에 기부를 할 때 대학을 지정할 수 있는 공통기금이고 기부자에게는 수익금와 세제혜택 등을 준다. 다만 원금을 쓰지 않고 이자만 대학에 배분하다보니 그 규모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 원금 6조원에서 나오는 이자만 활용할 경우 한 해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많아야  2000억원 정도에 불과한데.

최은옥= 그나마 규모가 늘어난 것이고 정부는 지금까지 총 1조원 정도 출연했다. 대학이 어느 정도 출연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들의 적립금이 총 8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수익률은 1% 미만이므로, 그 적립금을 묶어 기금으로 운용하고 위탁도 해 수익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황보은= 기금의 설치목적과 용도가 결국 기금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사립대 경상비인지 프로젝트 기반 연구비인지 지원 목적이 합의돼야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다. 우선 대학들이 등록금을 더 인상할 수 없고 물가는 올라가는 상황에서 대학경쟁력은 높여야 하니 결국 재정투자를 더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안정적인 경비를 지원해줄 기금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개별 대학들은 기금 운용면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를 활용해 미국 하버드대나 프린스턴대처럼 기금을 증식해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장학재단과 같이 자체 채권을 발행해 장기저리로 빌려줄 수도 있으니 다양한 방면에서 자금을 모아 활용해야 한다.

사회= 반 교수는 5조원 규모로 조성하자고 자문했는데.

반상진= 정부가 독자적으로 기금 운영주체가 될 수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독립기금과 관련해 연구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재원이었다. 대학은 힘들고 국가장학금도 4조원 정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등교육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금융·재계에 아이디어를 제시했더니 난색을 표했다. 고등교육 독립기금의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작동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금 자체가 수천억원 단위로는 운영이 안 된다. 최소 5조원 또는 10조원 이상의 파이가 있어야 지원도 보조도 가능하니 현실적인 과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최은옥= 2002년 당시 연구로 5조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인데 현재 대학 기부금은 더 줄어들고 있다. 기부금이 2004년에는 1조 4000억원 수준이었지만 2014년도에는 6000억원으로 10년 만에 절반이 줄었다. 원인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단 공적으로 기부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적 모금)가 생겼다. 또 각 기업들이 자체 재단을 만들어 직접 사업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누군가 한꺼번에 5조원 규모의 재원을 내놓을 수 없으니 결국은 여러 주체가 분담을 해야 할 것 같다. 정부도 역할을 하고,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재단에서 하기보다 기부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부금이 줄어드는 일면에는 대학이 투명하게 기부금을 운영·관리했는지  신뢰도 부족 문제도 있다. 그래서 중간기구로 공적기금을 만들어, 기업이든 개인이든 기금에 기부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조성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길용수= 2007년 말 교육부와 기금 설치안을 논의했을 때에는 ‘교육기금공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수배자 지정 기부금 방식, 공동모금 배분, 대학 적립금 운용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게 골자다. 기금 규모는 기반으로 최소 1조원을 밑바닥으로 깔아줘야 투자풀도 운용하고 자산운용사도 위탁 지정할 수 있다. 또 기부자에 대한 예우가 있어야 하는데.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교육신탁기금도 그런 의미다. 미국은 기부를 해서 수익이 나면 일정 부분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대학은 국가경쟁력이고 결국 돈 경쟁으로 귀결된다.

반상진= 과학적으로 얼마 정도가 적정한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OECD 국가 평균적으로 16조2000억원 정도가 고등교육예산으로 잡혀야 하는데 2016년도 교육부 예산은 9조2000억원 정도로, 약 7조원이 부족하다.

최은옥= 내년까지 고등교육 예산은 총 15조2000억원으로 OECD 평균치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4조원 가량이 학생 개인에게 돌아가는 국가장학금이라는 것이 문제다.

▲ 반상진 전북대 교수(사진=한명섭 기자)

반상진= 등록금을 더 인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부담이 너무 적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다. 우선 정부의 재정지원 파이를 키우고 기금은 보조적으로 가야 한다. 사회자가 지적한대로 이자로만 운영하는데 6조원의 원금은 너무 적다. 미국 사립대 재정 수입도 35%는 주 정부 지원, 30%가 기부금, 20% 정도가 대학등록금, 나머지가 수익사업으로 인한 수입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립대에 들어가는 정부 지원이 10%로 너무 적다. 기획재정부가 늘 말하는 ‘돈이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소득연계 반값 등록금’ 한 마디로 5000억원이었던 국가장학금이 4조원 가까이 늘어나지 않았나. 돈 없다는 것은 재계의 논리고, 우리의 논리는 투자의 우선순위다.(이 대목에서 모든 패널들이 공감을 표했다.)

황보은= 공감한다. 결국 수조원을 한 번에 늘리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길용수= 우선 대학구조개혁이든 뭐든 단계적으로 늘려나가야 할 것 같다. 일본은 교부금을 주기 때문에 평가를 통해 질이 안 좋은 대학들은 퇴출시키기도 한다.

최은옥= 우리나라가 일본을 20~30년 차이를 두고 따라가는 것 같다. 일본 역시 학령인구가 2000년대 들어 급감하면서 구조조정 하고 대학에 교부금을 늘려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았나. 다만 우리나라는 사립대에 경상비 보조금을 줘야 하는지 합의가 안 되는 상황이다. 기재부에서도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구조다.

길용수= 일본에서는 질 낮은 대학까지 교부금을 줘야 하느냐는 논리를 내세워, 부실한 대학은 컨설팅을 다 실시하고 그래도 교육 질이 좋아지지 않으면 돈을 끊는다.

황보은= 우리나라는 사립대가 75%를 차지하고 있고 사립대는 자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최은옥= 사립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반상진= 국가에서 교육 수혜자가 공공인지 개인인지 명확히 가치관을 갖는다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을 사적재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 방식을 따를 수도 미국 방식을 따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사립대 학교 수도 학생 수도 많아 경상비 지원도 쉽지 않다. 2012년에 추진했던 고등교육 교부금법이 경상비가 아니라 프로젝트 기반 기금으로 대학이 필요하면 주는 방식이었다. 부실한 대학에는 교부하지 않고 자연 소멸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백정하= (고등교육을)사적재라고 하지만 통제는 거의 공공재 수준이다. 철저히 사적재냐 공공재냐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황보은= 해외는 직업교육은 국가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업교육을 활성화 해야 중간 계층의 국민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지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직업교육은 거의 모든 전문대학이 사립대이기 때문에 완전히 사각지대가 됐다. 전문대학에 대한 정부지원은 32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반상진= 2016년 예산을 보니 교육예산의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고등교육 예산은 지난해보다 2500억원 정도만 늘어났다. 국가 철학을 자꾸 언급한 이유도 예산 분배를 보면 (우선순위가) 드러나니 아쉽다는 것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대학 재원을 자꾸 줄이자고  하는데, 역발상을 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는 즉 생산인구 감소이기 때문에 지속발전 측면에서 큰 위협이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일당백’의 인재를 만들 전략을 짜야 하는데, 규모가 적으니 예산을 줄이는 건 전형적인 기재부의 발상이다.

최은옥= 정말 그렇다. 교육계에서 계속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재부 논리대로라면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을 하자는 말밖에 안 된다.

백정하= 동의한다. 학생 1인당 투자 금액을 더 늘려 외국 유수 대학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학생수가 감소됐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인당 투자금이 유지되도록, 또 그 이상의 투자를 해서 교육의 질과 인재 육성 전략의 개선이 필요하다.

사회= 사회적으로는 국가 규모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고등교육기관 수가 많다는 시선도 있다.

반상진= ‘개나 소나 대학 간다’는 말은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노동시장의 체질이 달라졌고 오히려 고등교육 받는 사람이 늘어나야 체질 변화가 가능하다.

▲ 백정하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사진=한명섭 기자)

백정하= 우리나라가 이 정도 성장한 동력은 교육열이다. 이제는 고등교육을 받아야만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단적으로 프랑스에서는 국민들이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 국제기구에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정 연령이 되면 모두 대학에 가려고 하는 문화는 평생교육을 활성화해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진출했다가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도록 유연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 정부재정을 투입하려면 대학에 대한 평가도 이어지게 마련인데.

반상진= 정부에서는 BK21 플러스, 대학 특성화(CK), 프라임 사업 등 사업비 중심으로 재정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획일화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도  재정지원제한대학이 A등급을 받는 상황은 평가체제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최은옥= 일부 부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평가를 하다보면 대학들이 업그레이드 하려는 자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냥 놔두면 대학들이 스스로 교육·연구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생긴다.

반상진= 그것이 바로 정부와 대학 간 간극이다. 질 관리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는 정부 주도의 평가가 유효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왔다. 우리나라가 유독 벤치마킹을 하지 못하는 외국 시스템이 바로 피어 리뷰(Peer review)이다. 미국은 아이비리그 등 스스로 자존심을 걸고 리그를 형성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줄테니 변해보라'고 주문하는 방식이다. 4년제는 국립대부터, 또 전문대도 마찬가지로 서로 교육의 질을 보장하면서 교육 질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교육부에서도 평가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사회= 그래서 영국처럼 평가와 재정을 모두 담당하는 독립기구를 먼저 설립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황보은= 2007년 교육부에서 고등교육평가원을 설립하려다 좌절됐다. 독립적인 평가기구에서 재정도 독립적으로 배분했다면 지금처럼 대학들이 (국고사업에)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현상이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와 영국은 대학과 4~5년 주기로 파트너십을 맺고 재정을 지원한다. 평가 결과 일정 기준 이상이면 경상비를 지원하고 정책적으로도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재정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에서도 투명성 면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대학에서는 교육비 집행에서 일일이 눈치 보지 않도록 중간 영역의 평가재정기관이 필요하다.

반상진= 서남수 전 장관이 (차관 재임 시절) 꿈을 이루지 못했다. 독립기구가 평가와 펀딩 기능을 가지면 권력기관처럼 여겨진다. 또 생기더라도 어디에 두느냐도 관건이다. 대통령 산하, 교육부 산하, 제3의 기관, 혹자의 말처럼 국회에 두자는 말까지 있는데 그만큼 정치적 입김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독립기구로 고등교육위원회를 만들었으면 좋겠고 재정과 평가기능을 모두 갖추면 좋겠지만 위치에 대해서는 고민스럽다.

사회= 국가 재정이 들어가면 책임이 따르게 되는데 대학에 대한 감시가 더 심해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황보은= 당연히 감시를 받아야 한다. 다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대학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자율성을 유지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

반상진= 사전규제냐 사후규제냐의 문제다. 지금의 사업비 위주 지원에서 대학들이 갑갑해 하는 것은 사전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사실이다.

최은옥= 평가에 따라 사업비를 주니 대학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반상진= 착복해서 잘못 쓰면 당연히 감사해서 퇴출해야 하지만 사전에 너무 많은 걸림돌이 있어 대학들은 통제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황보은= 맞다. 과정에 대한 감시도 너무 많다. 1년 내내 평가만 준비하다가 세월 다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왔겠나. 대학들이 정작 역량을 집중해야 할 데에 집중하지 못한다.

길용수= 사업 일정이 단기간에 바뀌다보니 대학들은 어렵다.

사회= 독립기금이 조성되면 대학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면서도 효율성을 높이려면 어떤 배부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최은옥= 이번 신년기획 연재 기사에도 실렸던 대로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신탁기금이 조성되면 이자만 갖고 쓰게 된다. 금액이 크지 않으니 저리 융자를 하는 데 많이 쓰게 될 것이다.

백정하= 기금의 목적과 범위에 따라 역시 달라진다. 지금처럼 정부의 사업 위주의 선택과 집중이  일부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모든 대학에 기본적인 지원과 관련된 트랙도 별도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은옥= 현실적으로 예산배분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다. 일단은 재원이 한정돼 있고,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지 못해 어려우니 신탁기금이라도 우선 조성해 대학들이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도록 문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황보은= 지금은 대부분 대학이 국가만 쳐다보고 있으니 기금을 설치해 대학 자체적으로 3~7%의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재원을 다변화 하자는 취지다.

최은옥= 신탁기금은 기부상품 자체를 다변화할 수 있다. 세제 혜택이 있고 상품도 다양하게 만들수 있다. 기부자가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를 주는 형태도 있으니 기부가 더욱 활성화될으로 본다.

반상진= 어디까지나 보조장치로서 의미다. 근본적으로 재정 확보와 배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해방 이후 가장 장기적으로 유지된 사업은 BK21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다 없어지니 투자 지속성도 효율성도 떨어지는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목표를 세워 사업을 만들고 지원하는 국가는 없다.

사회= 영국의 고등교육재정위원회 모델을 장기적으로 우리가 도입할 수 있다고 보는가.

반상진= 어느 포지션에 두느냐에 따라 특정 기관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런 단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제3의 섹터가 정말 필요하다. 국민적 합의아래 소위 국가교육위원회 형태처럼 하자는 것이다. 교육부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진정한 정책 역할을 하도록 분담하자는 식이다.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형태로 설계하자는 것인데 위원회 구성이나 위치에 따라 정치적 입김에 좌지우지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이 교육부 역시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은옥= 그같은 의견에 동감한다.

황보은= (교육부) 공무원은 노력한 만큼 예산도 못 따고 대학은 괴롭다. 다 힘든 상황이다.

사회=우리는 독립적으로 고등교육 정책을 설계할 조직이 없다고 봐야 하나.

▲ 황보은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사진=한명섭 기자)

황보은= 정권 차원을 넘어 교육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뀐다. 물론 (독립기구 설치가) 현실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대학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긴 시각을 보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재정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총장 임기 4년동안에는 정책대로 추진하고 나중에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최은옥= 정말 그렇게 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교육역량강화사업은 포뮬러에 따른 평가방식에 따라 대다수 대학에 보조금(grant)이 나갔다. 그런데 성과가 있었냐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사업이 없어지기도 했다.

사회= 지금은 학부교육에 대한 사업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황보은= 그것도 문제다. R&D 재정 전문기관에서 학부 사업을 맡고 있고, 나아가 전문대학 직업교육 사업도 맡고 있다. 직업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최은옥= 그 외에 위탁할 기관이 마땅치 않은 측면도 있다.

반상진= 산하기관들이 전문성없이 사업관리를 맡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종합적으로 통제할 모체가 있어야 한다.

황보은= 그래서 큰 틀에서는 평가와 재정을 같이 맡는 중립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다.

사회= 새해에 맞춰서 '고등교육 독립기금 조성하자'는 기획을 시작하긴 했는데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대선 공약으로 나올 수 있도록 꾸준히 필요성을 알려야 할 것 같다. 한국대학신문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좌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대선 의제로 설정하는 데 힘쓰도록 하겠다. 장시간 허심탄회하게 심도있는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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