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법·사학법·교원지위법 등 '현재 지위' 보전 그쳐

‘의무교육’ 초중등 교사는 폐교 시 전근 등 ‘안전장치’ 보장

[한국대학신문 이재·차현아 기자] 대학 교수사회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학과가 통폐합돼 소속이 바뀌거나 소속대학이 아예 폐쇄되면서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초중등 교사는 학교가 폐쇄돼도 다른 학교로 전출돼 교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대학교수는 이 같은 제도적 보완이 없어 그대로 실직으로 이어지거나 신분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구조조정 여파로 폐쇄된 대학의 교수들은 신분불안을 피부로 체득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사립대 교수로 대우받던 김모 씨는 현재 대학원 시간강사로 출근하며 ‘교수’라는 명패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폐쇄된 벽성대학 학교법인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벽성대학은 2011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중대한 부정비리 사항이 적발됐으나 시정하지 않았다. 감사 이후에도 불법학위를 수여해 2014년 교육부로부터 학교폐쇄를 당했다. 폐쇄과정에서 명확한 해임절차는 없었다. 폐쇄된 대학의 교수라는 낙인 탓에 다른 대학에서 일자리를 잡기도 힘들었다.

김씨처럼 대학이 폐쇄되면서 교수직을 잃은 피해자는 벽성대학과 성화대학, 명신대 등 3곳에서만 138명에 달한다. 건동대와 경북외대 등 다른 폐쇄대학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커진다. 그러나 이들이 교수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령은 사실상 없다.

김 씨는 “대학을 부실하게 운영한 책임은 이사진에 있는데 애먼 교수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교육부가 사실상 직장폐쇄를 시킨 셈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초중등 교사는 법적 보호를 받는데 대학교수는 내버러져 있다”고 토로했다.

대학교수의 지위와 위상을 규정한 법은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등 3가지다. 국·공립대 교수는 교육공무원법의 적용도 받는다. 특히 교원지위법은 제정부터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을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육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대학교수와 초중등 교사는 △신분 및 직위 보유권 △직무집행권 △재심청구 및 행정쟁송권 △의사에 반한 신분조치를 당하지 아니할 권리 △권고사직을 당하지 않을 권리 △불체포특권 등을 공유한다. 교원지위법은 또 교원소청위원회를 설치해 교원이 구체적인 피해를 당했을 경우 구제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처럼 학교가 폐쇄되면서 교수직에서 해임된 경우에 대한 구제책은 없다. 초중등 교사의 경우 학교가 폐교되면 인근 공립학교 등으로 배치가 가능하지만 교수는 그대로 교편을 놓아야 한다. 양자 모두 사회적으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고 사립학교법이나 교원지위법 등에서도 이들의 동질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소속기관이 사라지는 등 구조적인 피해를 받았을 경우 신분 보장은 판이하다.

양자의 법적보호수준이 다른 이유는 국내 의무교육이 초중등까지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고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보는 국가는 유례가 없어 초중등 교사 수준으로 대학교수의 법적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그러나 붕괴하고 있는 교수사회에 대한 법적보호 수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절박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장경욱 변호사는 “사실상 학과구조조정과 대학폐쇄 등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례는 현행법에 의한 구제가 불가능하다. 이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려면 헌법소원까지 제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대다수 대학이 정년퇴임한 정규직 교수의 빈자리를 비정규직 교수로 채우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의 지난 2013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신규임용은 지난 2010년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2013년 처음으로 절반(50.8%)를 넘었다. 당시 전체 전임교원 2만 5563명 가운데 14.7%(3753명)를 차지했다.

학과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교수 사회의 격랑은 교육 전문성 하락 초래도 점쳐진다. 중앙대에서는 2009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이뤄진 구조조정의 여파로 소속 교수들이 전공과 무관한 학과로 편입되는 상황에 처했다. 학부제 내에서 전공선택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2013년에 비교민속, 청소년, 아동복지, 가족복지 등 4개 전공이 폐지됐다. 해당 학과 소속 교수들은 유사 전공 혹은 희망 전공으로 소속변경을 신청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복지 전공 교수가 엉뚱하게 경영학과나 심리학과로 편성되기도 했다. 결국 학생들이 듣는 수업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더 불안감이 큰 상황이다. 소속학과 폐과로 인해 소속이 변경되면 전공 분야 전문성이 떨어져 연구업적 평가에서 타 교수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진다. 인문학과 등 학과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기초학문 분야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해당 분야 연구인력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대학 교수사회가 빠르게 무너지면서 대학교수의 법적지위 향상에 대한 주장은 다각도로 터져 나온다. 특히 최근 대학회계가 설치돼 기성회회계 수당지급이 사라진 국립대는 사정이 더 급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립대 교수는 법적으로 교육공무원으로 분류돼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른 임금을 받는다. 공무원여비규정의 여비지급 구분에 따르면 대학교수와 부교수는 일반직 공무원 2급·3급에 해당하고 조교수는 3급~5급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수령금액을 보면 조교수와 부교수, 정교수가 받는 금액은 약 241만원, 290만원, 345만원 등 일반직 공무원 6~7급에 해당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국립대에서는 국립대 교수의 법적 지위를 새로 설정하고 이에 걸맞게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교수들의 법적지위를 보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적인 인식이다. 대학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대학교수는 ‘철밥통’으로 인식됐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구조조정의 격랑 속에서 ‘철밥통’ 교수들은 빠르게 저물고 있다. 노중기 교수노조 위원장은 “안정적으로 생활과 임금을 보장받고 있는 일부 교수들의 경우 철밥통이라는 일반적인 사회 시각에 부합하는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구조조정 여파로 인해 다수의 교수들이 신분 불안과 임금 조건의 후퇴 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 최윤진 교수(청소년학과)는 “시대 흐름에 맞춘 대학의 새로운 기능 확장을 국가차원에서 고민해야한다. 인문계와 예체능 계열 교수들을 억지로 다른 학과에 편입하는 개별대학 차원의 방법이 아니라 공적인 차원의 연구 인력풀 운영이나 평생대학 등 새로운 대학 기능의 장에서 기존 인력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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