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조정선도대학 사업 계획에 '학문다양성 침해' 우려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교육부가 올해 업무계획을 통해 발표한 ‘산업수요중심 정원조정선도대학 사업’을 두고 대학가에서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에서 진행한 인력수급 전망 조사 결과 2020년까지 사회·예체능·자연계열 인력의 과잉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기초학문 죽이기’ ‘학문다양성 퇴색’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교육부는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사업을 포함한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권역별로 산업수요에 맞는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인력수급 전망에 맞게 정원조정, 학과 통폐합 등에 적극 동참하는 대학에 연간 2500억원씩 3년간 총 7500억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산업수요와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 공급간 미스매치를 줄이겠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대학당 3억원에서 70억원까지 지원하는 대학 특성화 사업(CK)에 비해 한 대학 당 3~4배가량 높은 예산을 선정대학에 지원할 계획이다. 한 대학당 최대 210억~280억원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취업에 유리한 학과 정원은 늘리고 불리한 학과는 줄이거나 통폐합 하는 등 올 한해 학문단위 구조조정이 어느 때보다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사회·예체능·자연계열 기초학문과 사범대학이 정원조정의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미래 5~10년을 예측조사해 발표하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 인력이 27만 명 과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규인력의 경우 연 평균 1만8000명(초과공급률 9.8%) 규모다.

이같은 공급과잉은 2020년까지 모든 계열에서 나타날 전망이다. 숫자로만 보면 초과인력의 수가 가장 많은 분야는 사회계열로, 2020년까지 14만4000명(초과공급률 10.5%)의 인력이 초과된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초과공급률 자체가 가장 높은 전공은 자연계열(16.1%)이며, 교육계열(12.9%)과 인문계열(11.8%), 예체능계열(11.2%)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가장 먼저 정원을 줄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반면 의약계열과 교육계열은 2018년까지 인력공급이 부족한 것으로 전망했다. 고용정보원은 교육계열 역시 공급이 부족하지만, 통계상 대학원 학위를 취득한 현직 교사가 늘어났기 때문에 착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오히려 사범대학 졸업자 수가 지난해 2만3000명에 달했으나 실제 임용된 교원은 4600명이라며 사범대학이 대표적인 ‘인력 과잉’의 예로 꼽았다.

벌써부터 일부 대학생들은 이 사업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 사범대학을 비롯한 인문·사회·사범대학 학생대표자들은 대통령업무보고 사업계획발표 하루만인 23일 성명을 내고 “대학의 역할을 경제적 수요로 한정지은 편협한 관점이며, 교육의 근본적인 기능을 망각한 것”이라며 “학문 다양성을 파괴해 대학사회를 획일화 시킬 뿐 아니라 대학 본연의 역할마저 무너뜨리는 교육부의 이번 신년 업무보고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학가는 물론 전문가들 까지도 사업 방향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했다. 경북지역의 한 사립대 총장은 “산업수요를 기반으로 한 대학 재구조화는 필요하지만, 단순 정원조정이 아니라 교육과정과 대학체제 전환 노력, 지역산업현장에 친화적인 융복한 교육과정에 투자하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고 지적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박근혜정부 남은 임기 동안 경제개발 3개년 계획에 맞춰 무리하게 추진되는 정책이 아닌가 싶다”며 “대학들이 나름의 학문분야를 육성해 왔는데 또 급박하게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재정지원을 미끼로 한 또 다른 관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산업인력 미스매치는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국립대와 산업대 등을 활용해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교육부는 이달 안에 대학과 교육부, 인력수급 전문가 7~8명으로 TF를 구성하고, 상반기 중에 기본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히는 등 서두르는 모습이다. 내년도 2월에는 선정대학을 확정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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