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만 강조하는 과학계 풍토는 한계…과학을 하고 싶게 해줘야"

한 우물 파는 장기연구 이해 못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 안 돼 문제
한창 연구할 61세가 연구원 정년…이공계 기피와 의대쏠림은 당연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한국 과학자들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 우리나라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톰슨로이터가 선정한 올해의 '노벨상 수상 예측 인물(화학분야)'에 선정된 유룡 IBS 나노물질및화학반응 연구단장(KAIST 교수)과의 인터뷰는 위험한 발언의 연속이었다. 사회적인 평판에 신경쓰거나 근엄하기만 한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를 '과학계의 이단아'라고 평가한다. 무신경한 옷차림만큼이나 인터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반백의 머리에 검은색 배낭, 컴포트슈즈. 무언가를 꾸미거나 숨기는 데는 천성적으로 관심도 소질도 없어 보였다. 어쩌면 속시원한 인터뷰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것이 아닐까. 지난 21일 아침, ‘IBS-영국왕립학회 리서치 컨퍼런스’가 열린 서울대에서 그 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해오던 유 단장을 본지가 만났다.

■ 우리나라는 ‘사람’이 아닌 ‘과제’에 지원금…'한 우물' 연구 가로막아

-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연구자라고 들었다
“그래서 더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한 분야를 연구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 연구자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풍토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 연구지원 프로그램은 전부 ‘과제중심’ 지원체제다. 특정 인물에게 나오는 지원금은 없다. 신진연구자부터 중견연구자, 국가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똑같다.”

- 과제위주 연구지원의 부작용이 무엇인가
“국내 연구지원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인 국가과학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아왔다. 매년 15억씩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3+3'이라는 조건이다. 지원금이 사람이 아닌 과제에 나오기 때문에, 처음 3년 '과제'의 수행 결과를 보고서 추가지원 3년을 결정하는 구조다. 나처럼 한 분야를 파고드는 연구자에게는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장벽이다. 3년이 지난 후, 지원금을 연장해달라고 교육부의 실장과 국장을 찾아다니며 애걸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말은 ‘국가과학자’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해놓고, 실상은 사람이 아니라 과제에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과제 중심 연구지원 프로그램으로 인한 피로감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중견과학자들이 ‘국가과학자’를 포기하고 기초과학연구원(IBS)으로 둥지를 옮기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 IBS로 옮긴 이후에는 좀 나아졌나
“국가과학자 지원을 받은 지 4년 반 만에 IBS로 옳겼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물고 늘어졌다. 국가의 돈을 받고 약속한 과제를 끝마치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는 '죄목'이었다. 물론 조기에 연구를 마무리 짓고 한국연구재단의 허락을 받고 옮긴 것이라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국회의원 입장도 이해가 간다. '지금 하겠다는 연구를 살펴보면 당신이 몇 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사급 연구원이 국회의원 보좌관의 호출을 받아 서울로 불려가곤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람이 아닌 과제에 대해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문제다. 국가 정책이 한 사람이 같은 연구를 깊이 있게 계속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 선진국처럼 동료 평가 등으로 뛰어난 과학자를 선정해 지원하는 것이 왜 안되나
“국가가 연구자들을 믿지 않는다. 관리자로서 당연한 입장이기도 하다. 쉽게 생각해보자. 내가 이번에 톰슨로이터로부터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에 대한 평가가 어떨까. 한 분야를 파는 나 같은 연구자에게 뭘 믿고 초장기 연구지원을 하겠나. 사람보다 과제에 지원하는 것이 안전할 수밖에...”

- 세계적인 과학자를 많이 배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노벨상급 과학자를 기르고 싶다면 적어도 실력이 검증된 정상급 국가과학자에 한해서는 사람에게 지원해야 한다. 과제 위주 지원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젊은 과학자들은 당연히 과제 중심 평가와 지원으로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후 창의연구 등 국가적 연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연구자들에게는 기꺼이 사람위주의 지원을 해야한다.”

■ “과학자의 사명감 강조 불편해…노벨상 원한다면 과학자가 춤추게 하라”

-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우리 과학기술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해법은 없을까 
“간단하다. 과학기술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려면 과학자들에게 높은 연봉을 주면 된다. 프로축구 선수들이 슬슬 게임이나 즐기면 될걸 왜 그렇게 죽어라 뛰나. 잘하면 더 높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자들 중에 아마도 내 연봉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상급 프로스포츠 선수의 연봉에 비하면 그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과학계가 ‘국가과학자’라는 걸 만들어 놓고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명예를 줬으면 됐지 왜 부까지 주느냐'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다. 사실 과학자를 평가하는 것은 과학자다. 과학정책을 세우는 것도 과학자이지 정부가 아니다.”

- 일본도 열악한 처우와 환경속에서 ‘장인정신’을 갖고 연구한다
“우리나라도 천천히 하면 되지 왜 이렇게 급해서 난리인가. 일본은 과학의 역사가 깊고 기본 실력이 탄탄하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수준을 빨리 끌어올리고, 일본을 따라잡고 싶으면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천천히 가도 좋으면 안 해줘도 그만이다. 가만 놔두면 된다.”

- 흔한 연금도 없다. 과학자 처우가 왜 이렇게 열악한가
“아무도 모르는 이공계열 연금이 있긴 하다. 오래전 이야기다. 과거 윤한식 박사의 아라미드 펄프 관련 연구 성과를 높이 산 정부가 월 200만원의 연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체육계 연금보다 많은 액수였다. 헌데 이를 시기한 다른 과학자들의 투서가 그렇게 많았다고 한다. 정부가 골이 아파서 그만 뒀다. 창의과제 지원자로 선정됐을 당시 과기부(현 미래부) 관계자가 들려준 일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그 양반이 쓰게 웃더라."

- 다른 나라도 이런가
“유럽이나 서구사회는 더 뛰어난 연구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하는 풍토가 있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것 같다. 같은 과학자이면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 이번에 일본 과학자들에게 미국으로 오라고 일갈했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 교수가 생각난다
“나도 외국에 나갈 생각이 있다. 류현진, 박지성 선수가 외국 나가서 활약하면 국민들이 박수를 치지 않나. 운동선수는 되는데, 과학자라고 나가면 안될 이유가 있나.”

- 과학기술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이지만 축구는 아니지 않나
“그러면 과학자에게 더 잘해줘야지. 잘해주는 거 하나도 없지 않은가."

- 과학자의 사명감은
“사명감? 우린 ‘프로 과학자’들이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하고, 남보다 잘 살고 싶다. 그런데 왜 과학자라고 해서 사명감만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명감을 요구하기에 앞서 그에 걸맞게 대우도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 수준급 과학자들은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연구를 더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대우를 해주는)외국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다. 정부가 그걸 막을 권리는 없다. 나카무라 교수도 일본을 떠나 미국에 가서 노벨상 받지 않았나.”

- 그래도 연구는 일본에서 하고 국가에 공헌했다
“나도 한국에서 지금까지 연구했지 않나. 솔직히 그동안 그런 생각 여러번 했다. 너무 힘든 경험들을 많이 해서…….”

- 외국에서 제안을 받았나
“말하지 않겠다. 지금이라도 옮기려면 옮길 수 있다. 다른 과학자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번 둥지를 옮기려면 실험실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등 부담이 많아서 망설이는 것일 뿐이다. 너무 사명감 따지면서 과학자들에게 요구만 하지 말고 과학자들도 사람인데 신나게 일하고 연구할 수 있는 풍토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 “석·박사에 포스트닥터까지 마친 연구원 정년이 61세…이공계 기피 당연”

-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노벨상 전망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90%는 격려고, 10%가 사실이다.”

- 10%의 희망이란
“열심히 하는 연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하는데 가장 저해가 되는 것은 그런 젊은 연구자들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원하는 연구하느라 바쁜 게 아니다. 돈이 되는 인기 과제 쫒아다니느라 바쁘다. 그렇게 안하면 연구비를 못 딴다.”

- 젊은 과학도들의 이공계열 기피와 의대 쏠림이 심각하다
“젊은 과학자들에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이공계 기피다. 의학계열 빼놓고는 물리나 화학 등 기초과학분야는 맨파워가 빠져나가서 굉장히 힘들다. 예전에 비해서 연구자 수준이 내려가고 있다. 또한 연구 풍토가 좋은 저널에 논문을 많이 내는 위주로 가다보니까, (주제를 바꾸어 여러 논문을 쓰기 위해)연구 분야를 계속 바꾼다.”

- 부모가 연구자일수록 자녀들은 의대를 보내려고 더 성화라더라
“국책연구단지 박사님들 정년이 61세다. 대학교 학부만 나와도 되는 초중고교 선생님들 정년이 63세다. 석사와 박사,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리는 포스트닥터 과정까지 마쳐야 했던 연구원들이다. 61세가 되면 그만둬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내가 지금 59세다. 내가 어때 보이나.”

- 한창 연구하실 때 같다
“학생들과 야구하면서 강속구도 뿌린다. 자기연구에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60세면 한창이다. 지금 내가 59세인데 내후년에 짤렸다고 생각해보자. 집에 가서 애봐야 한다. 물론 교수는 정년이 65세고, 나는 어쩌다보니 학교가 70세까지 보장을 해주고 있다. 전체를 이야기 하는 거다. 심지어 기업체 연구소에 들어가면 대부분 52세면 나와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당연히 의대를 갈 수 밖에. 의사는 돈도 많이 벌지만 정년이 없고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으니까.”

- 교수님 연구실에서도 연구원이 의대로 가버린 경우가 있는가
“한 사람 있었다. 내가 더 이상 말을 못한다.”

■ “이공계열 학생들 권리장전 움직임 어불성설…돈을 내고 다녀야지”

- 교수의 역할은 
“우리 연구실의 경우, 대부분의 핵심 아이디어는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내 과제를 따내고, 학생들은 연구에 참여하면서 배우는 거다.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이 오히려 돈을 내고 다녀야지, 학교가 돈 주면서 공부도 시켜주고 박사학위도 주고 있는거다'하고."

- 학생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일텐데
“모르지 내 앞에서는 그렇다고 하긴 하지만. 최근 이공계 학생들이 마치 노조처럼 움직이면서 권리장전이라는 걸 만들어 연구실 문에 막 붙이고 그러는데, 그건 아니다. KAIST에서도 학생들이 권리장전을 붙이겠다고 해서 내 실험실에는 절대 붙이지 말라고 크게 반발했다. 내가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어느 곳도 학생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다. 일부 착취하는 교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왜 전부를 가지고 흔드나. 요새 아이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환멸을 느낀다.”

- 그래도 힘든 건 맞지 않나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고생하느냐. 노력하지 않으면 못 먹고 산다. 우리 같은 사람이 힘들게 훈련시켜 박사로 키우는 것은 학생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교수가 학생들 눈치보고 좋은 말만 하고 그러면 아무 쓸모없는 박사들이 나오는 것이다.”

▲ 유룡 IBS단장은 과학자의 사명감만 강조하는 국내 분위기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과학 발전을 위해서 과학자도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종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유 단장은 백팩을 메고 다닌다. ⓒ이우희 기자
■ “나는 과학계의 이단아…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해야”

- 왜 과학자가 됐나
“우리 때는 의대가 인기가 없었다. 서울대 공대를 들어갔는데 공대계열이 성적이 가장 높았다. 처음부터 과학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 어떻게 KAIST 교수가 됐나
“교수도 간신히 됐다. KAIST는 물론이고 과거 한국과학기술대학(KIT) 임용에서도 탈락했다. 전공 불일치와 순혈주의 등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얼마전 작고하신 당시 최순달 KIT 초대학장이 다른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독결정으로 나를 뽑아 주셨다. 이후 KIT가 KAIST와 합쳐졌다.”

- 연구성과는 언제부터 냈나
“내가 지금 성공한 이유는 처음부터 두뇌가 뛰어나고 연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사회적인 관습에 따르지 않고 남과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무리를 따르지 않고, 관행에 반발하는 이단아였다. 힘든 점이 많았다. 당시 교수사회는 회식이 많았는데, 회식 빠지고 연구한다고 그러면 손가락질을 받았다. 욕 많이 먹었다.”

- 얼마나 몰두했나
“30대 땐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연구에 빠져 살았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고,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도 연구했다. 밥 먹으러 집에 잠깐 들르는 것 정도가 휴식이었다."

- 실험실 안에서,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나
“일종의 두뇌게임이다. 자기가 낸 아이디어가 통하나 안통하나 그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 좋은 과학자란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을 만들어서 그 분야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야에서 멋있는 논문을 내고 좋은 저널에 논문이 실린다고 좋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을 헷갈린다. 기술은 창의력이 없어도 남이 해놓은 것을 응용만 하면 된다. 진짜 과학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그런 과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나아가 노벨상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유룡 단장은...
경기 화성 출생으로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화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유 단장은 KAIST에서 교수를 지내면서 나노분야 연구에 오랫동안 매진했다.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세계 과학자들이 유 단장의 논문을 많이 인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전자현미경학회 최우수논문상(2001) △올해의 KAIST 교수상(2001)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2005) △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기술인 선정(2006) △한국과학재단 및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주관사 미국 톰슨사이언티픽 선정 '올해 세계 수준급 연구영역 개척자상'(2007) △'올해의 국가과학자' 선정(2007) △호암상 과학상(2010) △국제제올라이트학회 브렉상(Breck Award)(2010) 등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 보완 및 해명자료

상기 기사와 관련, 유룡 IBS단장(KAIST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로 사용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장학금이 지급되고 경우에 따라 보너스와 격려금도 지급되며 학생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일도 없는 것으로 실험실 학생들로부터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농담조로 ‘너희들이 돈을 내고 다녀야지’라는 발언이 나온 것임을 밝힙니다. 유 단장은 또한 ‘핵심아이디어는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라는 발언은 실험실의 성과에 대한 설명일 뿐, 권리장전을 반대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해없기를 바란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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