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교육부·대학 간 삼자 협의체 구상은 소문만 무성

평가지표 7월 마련-공개는 9월 ‘밀실행정’ 성토
대학구조개혁위원회, 대학 의견수렴에 한계 노출

2004년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 이후 대학구조개혁 정책 추진 10년이 지나고 있다. 10년간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대학가의 불신과 불만을 키웠다. 교육부와 대학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평가방식에는 좁힐 수 없는 이견차를 보여왔다. 대학가에선 '정부재정지원사업을 미끼로 한 교육부의 일방적 대학 줄세우기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며 대학구조개혁 정책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향후 대학구조개혁 정책의 새로운 방향과 신뢰구축 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심층 취재 보도한다. <편집자주>

[한국대학신문 이재·김소연 기자] 대학구조개혁 정책 당사자들의 신뢰구축은 가능할까. 칼자루는 교육부가 쥐고 있다. 그간 대학구조개혁 세부 평가지표 개발을 위한 공동개발위원회나 국회와 교육부, 대학이 참가하는 대학구조개혁 삼자 협의체 등 각종 방안이 논의됐으나 교육부는 미온적으로 반응했다. 그 사이 지난 9월 30일 한밭대에서 교육부가 정한 평가지표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면서 대학과 교육부 사이는 또다시 멀어졌다.

교육부는 이번 평가지표를 대학구조개혁위원회와 한국교육개발원 등을 통해 개발했다. 지난 5월부터 개발에 착수해 당초 8월 발표를 예정했다. 그러나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대학구조개혁을 총괄할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이 세월호 참사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태 등으로 맞물려 사퇴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추진되던 8월 공청회는 무산됐다. 이후 황우여 장관이 취임할 때까지 평가지표 마련은 잠정적으로 연기됐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이미 7월부터 평가지표가 마련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공청회를 준비했다는 것이 이미 평가지표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라는 주장이다. 한 사립대 교수는 비공식적인 경로로 대학가로 흘러들어간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육부는 9월 30일 공청회에 평가지표를 첫 공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교수는 “이미 8월경부터 대학가 요직의 인사들은 평가지표를 확인했다는 증언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과정이 교육부와 대학 사이의 불신을 더 증폭시켰다.

평가지표의 내용도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좋은 대학’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평가지표의 세부항목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원에서 실시하는 대학 기관인증평가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당장 교육부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협의체인 대교협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구욱 대교협 부회장(영산대 총장)은 “국가와 사회의 여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간 대교협이 운영해온 대학 기관인증평가의 위상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며 “유사한 지표를 차용해 교육부에서 새롭게 평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행정력 낭비다”고 지적했다.

■ ‘민관협의체’ 대학구조개혁위원회 공론의 장 해갈 못해= 이처럼 갈등이 다시금 증폭된 상황에서 삼자협의체 구상은 유효할까.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대한 ‘민관(民官)’ 협의체로는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이미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 20명의 위원이 활동하는 이 위원회는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출범했다.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을 위원장으로 △관련단체 4명 △법조계 1명 △회계분야 2명 △산업·경제계 5명 △학계 8명으로 구성됐다.

당초 목적은 △사립대학의 구조개혁과 통·폐합 촉진 △국립대 선진화와 통·폐합 사항 △교과부장관이나 위원장의 요구에 따라 대학구조 개혁에 관한 제반 사항의 논의 등 세 가지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위원회의 활동은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에 그치고 있다. 워낙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에 대한 대학가의 반발이 거셀 뿐만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평가방식과 결과에 대한 불만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통한 대학가의 민심수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교협과 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 등 대학 협의체는 지속적으로 새 협의체제를 만들 것을 요구해왔고, 전임 서남수 교육부 장관 역시 다양한 기회를 활용해 대학 총장들을 만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9월 회동 시에는 대학 평가지표를 공동으로 만들자는 공동개발위원회에 대한 구상까지 나왔다. 백성기 대학구조개혁위원장 역시 스스로 “대학과 교육부의 실무진들이 직접 평가편람을 공유하고 지표를 공동 개발하는 실무위원회의 가동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 제 2의 민관협의체 구상까지 등장…대안제시 이어져=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민관 협의체 구상은 김준영 대교협 회장(성균관대 총장)이 꺼냈다. 지난 8월 본지 초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설훈 위원장과 대학 총장간 협의회에서 김 회장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만나 평가기관이나 평가지표와 관련해 대학과 국회, 교육부가 협의 체제를 이뤄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에 황 장관이 긍정적으로 답을 했다”며 제2의 민관협의체 구상을 제안했다.

제2의 민관협의체 구상은 대학 총장들이 그간 대교협이라는 경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추진해오던 교육부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공식화하고 정례화하는 효과가 있다. 공식적인 의견수렴 기구가 되는 것이다. 대교협이나 사총협 등 유력한 대학협의체들은 독자적인 총회를 통해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방식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외부투쟁’을 진행해왔는데, 민관협의회가 구성되면 이를 보다 공적인 경로로 주장할 수 있게 되며 반영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총장이 교육부 장관을 면담하러 교육부를 찾아도 몇 시간을 기다리거나 혹은 국장이나 실장만 보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기적인 회동을 갖는 공식기구가 생기면 이보다 활발히 대학가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위상 문제 외에도 대학가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평가방식에 대한 재고다. 대학가에서는 줄기차게 불이익을 주는 상대평가 방식의 현행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인센티브를 주는 절대평가 방식의 평가로 바꾸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외곽에서 성명서를 채택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민관협의회를 통해 국회까지 포함된 협의 체제가 구축되면 상명하달식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에 제동을 걸고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백 위원장 등이 주장한 공동개발위원회는 민관협의회의 ‘입장전달’을 넘어 실제 지표 구상에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한국교육개발원 등 평가지표 마련에 관여한 연구진은 물론이고 대교협과 대학이 추천한 고등교육 전문가들이 공동의 평가지표를 구성하는 실무회의를 추진하는 셈이다. 평가자인 교육부와 피평가자인 대학이 함께 의사결정에 나서기 때문에 보다 민주적인 평가가 가능하고 평가결과에 대한 불평도 사그라질 것이라는 기대어린 분석이 많다. 그간 불신의 끝을 달려온 정부와 대학이 머리를 맞댈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특히 평가지표는 대학의 재정지원사업 선정이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등을 결정짓는 잣대여서 더욱 중요성이 강조된다. 진민 경남대 기획처장은 “대학평가에서는 결국 평가기준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부가 주도하지 않는 다양한 각계각층의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진 처장은 “교육부와 관계를 맺었던 교수들이 교수나 그 인맥에 기댄 사람들이 현재 평가지표 구상에 많이 관여하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발 더 나아간 견해도 있다. 교수단체 등에서는 대학 평가지표 연구에 교수단체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기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숭실대 교수)은 “교수는 대학평가내용을 실제 현장에서 수행하는 주체다. 이들의 의견과 대학현장의 고민이 평가지표에 담겨야 하고, 그를 위해 교수들이 참여하는 공론화된 평가지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민관협의체 구성논의 지지부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그러나 장밋빛 전망과 달리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부산지역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던 관계자들이 모두 뒷짐을 지고 있다. 교육부는 삼자 협의체 구상에 전혀 반응이 없고 도리어 평가지표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뒤통수를 친 격이 됐다”고 내다봤다. 말만 무성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통한 정원감축을 가장 큰 현안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모두 학령인구 감소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반대로 대학은 대학운영의 자율권과 재정문제 해결이 첫손에 꼽힌다. 일부 대학에서는 오히려 ‘문제대학 솎아내기’를 제대로 못해서 모든 대학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교육부처럼 강하게 의식하진 않는다. 이처럼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염두에 둔 ‘대학구조개혁’의 개념이 다르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그리고 지방과 수도권 대학 등 위치와 규모, 설립주체에 따라 처한 환경이 다른 것도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데 어려움으로 꼽힌다.

구성상의 어려움과 함께 민관협의체가 제 역할을 못할 것이란 전망도 크다. 이운룡 영산대 기획처장은 “민관협의체를 구성한다고 해도 논의의 주관은 주무부처가 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지금 형태의 대학구조개혁의 담론형성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식행위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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